#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 A사는 2년 후로 계획된 가업 승계를 앞두고 고민이 깊다. 일흔이 넘은 창업주는 장남에게 주식을 물려주고 은퇴하고 싶지만 상속세 부담이 크다. 회사 규모가 확대되면서 제법 많은 돈을 번 창업주는 대부분의 수익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다. 가업승계에 따른 세금 납부를 위해 보유 주식을 매각해야 하지만 경영권이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국내 중견기업들이 호소하는 전형적인 딜레마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허리를 떠받치는 중소·중견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규모에 안주하면서 더 이상 성장을 멈추는 ‘피터팬 신드롬’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고 나면 각종 지원이 사라지고 대신 수많은 규제가 옭아매기 때문이다. 반면 상당수 국가들은 기업이 지속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조세 부담을 덜어주는 추세다. 호주·캐나다·이탈리아 등은 이미 상속제를 폐지했고 영국·독일 등은 과세율을 낮추고 있다. 상속세 감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일본 정부도 중소기업 승계를 촉진하기 위해 상속세 감면 혜택을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 및 집권 자민·공명당은 22일부터 ‘사업 승계 세제’ 수정 방안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토에 들어갔다. 사업 승계 세제는 최고경영자(CEO) 사망 후 중소기업을 물려받을 경우 전체 주식의 3분의2에 대한 상속세 80% 납부를 유예해줌으로써 사업 승계를 촉진하는 제도다. 다만 △상속 후 5년간 80%의 고용 유지 △사업 분야 변경 금지 등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면제된 상속세를 다시 납부하게 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졌다. 이에 상속세 면제 상한인 ‘주식의 3분의2’를 ‘전체 주식’으로 확대해 납부 상속세 자체를 줄이는 한편 친족 외 경영자에게 경영권을 넘길 경우에도 면허세·부동산세·취득세를 일부 면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상황은 사뭇 다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중견기업 1,036개 중 78.2%가 가업 승계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는데 이 중 72.2%가 상속·증여세 조세부담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업승계 관련 세금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행 상속세 규정은 최대주주는 최고 실효세율이 상속 자산의 50%에 30% 할증을 더해 최고 65%의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정부는 조세 저항을 고려해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직전 3개연도 평균매출액 3,000억원 미만 △피상속인 가업 10년 중 5년 이상 대표이사 재직 △상속 개시일 전 2년 이상 상속인 가업종사 △가업상속 후 10년간 정규직 근로자 수 유지 등 요건이 까다로워 적용 대상이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최근에는 중견기업의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더욱 강화했다. 기획재정부가 8월 발표한 ‘2017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2019년 11월부터 중견기업 가업 상속인의 가업 상속재산 외 상속재산이 상속 세액의 1.5배보다 많으면 가업상속공제 적용을 배제하기로 했다. 내년 11월 이후에는 500억원의 공제 한도를 받을 수 있는 가업 영위 기간도 20년 이상에서 30년 이상으로 조정했다.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가업상속제도의 취지를 살리고 과세 형평성을 실현한다는 이유에서다.
군산에서 조선기자재 부품을 납품하는 B사 대표는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에서 중견기업 전체(매출액 1,500억원 이상)로 확대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오히려 제도가 역행하고 있다”면서 “어차피 매출액 3,000억원을 넘으면 조세 혜택을 못 받으니 굳이 회사를 키울 필요가 있겠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고 꼬집었다. 이호중 에이치엘씨 세무회계컨설팅 대표는 “창업주의 고령화로 가업승계를 앞둔 중견기업들이 많은데 조세 부담 탓에 적기를 놓치는 회사가 적지 않다”며 “당장 획기적인 제도 개선이 어렵다면 상속세 부담으로 존속이 어려운 기업에 한해서라도 가업상속공제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해욱·변재현기자 spook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