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났다고 절대 혼자 퇴장하면 안 된다. 시험 전까지 시험장 바뀌는 문자 오는지 꼭 확인하고. 알았지?”
포항고등학교 3학년 4반 담임교사 도향숙(54)씨가 한 남학생에게 초콜릿을 쥐여주며 신신당부했다. 학교 차원에서 수험생 유의사항과 간단한 지진 대처 행동요령을 안내했지만 도 교사는 노파심에 제자들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약 40분의 예비소집이 끝나자 도 교사 주위로 몰려든 학생들이 하나둘 손을 내밀었다. 다양한 색깔의 패딩을 입은 남학생들은 손을 한데 모으고 외쳤다. “내일이면 끝이다, 파이팅!”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22일 전국 85개 시험지구 1,180개 시험장에서 수험생 예비소집이 열렸다. 사상 초유의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됐던 포항 지역 27개 고등학교도 예비소집을 무사히 마쳤다. 이날 포항고 예비소집에 모인 재학생, 졸업생, 교육청 접수 검정고시생 등 410명은 “제발 여진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한마음이 됐다. 이들은 예비소집 후 23일 입실 전까지 강한 여진이 발생하면 포항고가 아닌 경주공고로 가서 시험을 치러야 한다.
지난 15일 포항고등학교 강당에서 수능 시험 주의사항을 듣던 권은성(19)군은 천장이 양쪽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직접 봤다. “밖으로 나가라”는 한 남자선생님의 목소리를 의지해 운동장 밖으로 뛰었다. 땅은 물이 고여 있었고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그 길로 가족들과 함께 안동으로 피신했지만 여진이 느껴질 때마다 불안에 떨었다. “매일 밤 여진 때문에 뜬눈으로 지새웠다”는 김군은 23일 수능을 무사히 치르고 경북대 경영학과에 입학하길 손꼽아 기다린다.
A대학 무역학과에 붙었다는 안지혁(19)군도 “내일 지진만 안 나면 더 좋은 대학을 쓸 수 있다”며 “지진에 미래가 달린 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안군도 15일 예비소집을 받던 날 흔들림을 느끼고 강당을 빠져 나왔다. 택시도 잡히지 않는 길목에서 30분을 홀로 서 있었을 때 두렵고 무서웠다. 62차례 여진이 계속될 때마다 안군이 속한 카톡방도 시끄러웠다. 안군은 “솔직히 타 지역에 비해 억울한 면도 많다”면서도 “제발 내일 무사히 수능 치러서 ‘인생역전’하고 싶다”며 웃었다.
이날 예비소집은 포항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대부분의 학교가 시험실 배치표와 지진 대처 매뉴얼만 배포하고 별도 소집은 없앴기 때문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수험생들을 대신해 시험장에 붙어 있는 배치표를 휴대폰으로 찍어가기도 했다. 이화여고를 찾은 수험생 이모(18)양은 “지난 일주일이 지난 3년과도 같을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며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수능 연기가 성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포항=신다은·최성욱기자 down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