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업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투자를 요구하면서 조선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회생절차(법정관리)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난 대우조선해양은 산단 부실화 책임을 놓고 하동군과 1,100억원대 법정 다툼을 벌인 데 이어 거제시로부터 또 산단 투자를 요구받기도 했다. 이에 가뜩이나 어려운 조선소들에 지자체가 짐을 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2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임태혁 부장판사)는 대우조선해양이 하동군청을 상대로 제기한 분양대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하동군이 대우조선해양에 84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이 금액은 대위변제한 770억8,300만원에 지연손해금 70여억원을 더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 하동군이 추진하는 일반 산단인 갈사만해양플랜트산단에 입주하기로 하고 부지 66만㎡를 사들이는 등 880억여원을 투자했지만 산단 공사가 계속 좌초하자 지연손해금을 포함해 1,114억원을 물어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동군은 이 회사 말고도 산단 시공사인 한신공영과 423억원의 공사대금 청구 소송에 휘말려 있다.
하동군은 사업비 1조5,000억원이 넘는 갈사만 산단을 조성하며 대우조선해양의 투자를 받아냈지만 부실 논란과 조선 경기 악화가 겹쳐 공사는 2014년부터 표류하고 있다. 감사원은 올해 4월 갈사만 산단 사업에 대한 감사에서 각종 계약과 관련한 담당 공무원의 비위 사실을 밝혀내고 법적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동군 관계자는 “산단 조성을 계속 이어간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추후 항소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조선업계는 하동군 인근 거제시가 새롭게 벌이는 해양플랜트 국가산단 조성사업에 투자하라는 요구에도 시달리고 있다. 거제시는 국토교통부 중앙산단계획심의위원회 승인만 나면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사업비 1조7,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공사로 거제시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투자를 기대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산단 승인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며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바닥을 찍었다고 보고 만드는 산단이며 당장이 아닌 6~7년 뒤를 내다본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업계에 따르면 거제시 측은 대우조선해양 등 주요 기업들에 미래 사업계획을 포함한 보고서 제출을 요청하며 투자를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감 절벽을 견디려고 있는 자산도 팔아치우는 마당에 기업들에 신규 사업 출자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라고 하니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업황이 반등하기 전까지 산단 참여는 힘들다는 의사를 거제시에 전달했다고 한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투자 의향은 전했지만 아직 확실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라며 “비교적 수주물량이 넉넉히 남은 대우조선해양과 달리 우리는 빠른 속도로 물량이 빠져나가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이종혁·김우보기자 2juzso@sedaily.com 창원=황상욱기자 so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