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설비기술부. 천장에 붙은 수백 개의 사각형 판이 나사로 촘촘히 박혔다. 공장 내 전면 창은 통유리가 아닌 격자형 유리다. 공장 내 100m 높이 굴뚝은 철강제로 감겨 있었다. 지난해 9월 경주 지진 이후 천장재와 굴뚝 외벽까지 내진 설계가 적용된 것이다.
내진 설계는 지난 11월15일 오후2시께 포항 북구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터지자 빛을 발했다. 여의도 3배 크기(900만㎡)의 생산공장에는 일제히 자동 경보가 울렸다. 일하던 1만여명의 직원들은 생산 속도를 늦추고 외부로 피신했다. 크레인은 매뉴얼에 맞춰 1,200도의 쇳물을 담은 주전자 모양의 래들을 차가운 땅에 놓았다. 인명과 설비 피해는 ‘제로’. 임지우 설비기획섹션 팀장은 “포항 공장에서 느낀 지진은 진도(지표면 진동 크기) 7로 경주 지진(규모 5.9·진도 6)보다 컸지만 철저한 내진 설계로 피해를 막았다”고 강조했다.
1988년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시행된 탓에 1972년 지어진 포항 공장은 대비가 완벽하지 않았다. 경주 지진 당시 일부 변압기가 파손되고 천장이 부서지는 등 작은 사고가 있었다. 제철소는 지반에 파일을 박아 끄떡없었지만 생산설비들의 내진 설계가 미흡해서다. 무엇보다 일관된 대응 매뉴얼이 없어 현장에서 혼란도 생겼다.
포스코는 이후 대설·폭우·태풍 등이 중심인 풍수해 매뉴얼을 지진을 포함한 자연재해로 격상했다. 세 곳에 지진계를 설치하고 지진이 실제 포항 생산시설에 어떤 진도로 전달됐는지 알리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변압기는 볼트를 이용해 땅에 박고 유리는 격자형으로, 천장은 일체형 또는 일일이 나사를 박아 고정했다. 넘어지면 공장 전역에 연결된 가스관을 때릴 수 있는 굴뚝은 외벽을 탄소섬유시트로 둘렀다. 뜨거운 설비를 냉각하는 수조는 돌솥비빔밥 용기처럼 철판으로 겉면을 감았다.
내진 대응의 백미는 1,000여곳의 운전·조종실에 뿌려진 매뉴얼. 포스코는 올해 8월 △인명피해 △화재폭발 △쇳물유출을 우선순위로 △개인행동 △설비대응 △설비점검 등 세부 매뉴얼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전 직원이 매뉴얼을 서로 소리 내 읽는 윤독회만 156회 실시했다. 10월에는 소방서와 함께 200여명이 지진 모의훈련을 열어 실제 대응력을 높였다. 지진이 터지자 크레인이 쇳물 용기를 곧바로 땅에 내린 것도 수십, 수백 번 반복된 연습의 결과다.
포스코는 “창업주 고(故) 박태준 회장의 ‘안전 완벽주의’에 입각해 지진 대응체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1977년 현장을 돌아보던 박 회장은 70m 높이 발전송풍설비의 구조물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을 발견하고 ‘폭파 기념식’을 지시했다. 이튿날 모든 현장의 임직원이 보는 가운데 다이너마이트로 해당 시설을 폭파했다. “부실 공사는 있을 수 없다”는 경고였다.
포스코는 올해 부산대와 한국지진공학회에서 생산시설이 규모 6.3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포항 지진보다 23배 큰 지진이 공장 지반 바로 밑 10㎞(진원)에서 터져도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임 팀장은 “내진 설계는 앞으로도 더 향상하겠다”고 설명했다.
/포항=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