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대출금리 뛰고 조건도 깐깐해져
가능한 빨리 갚는 게 최상 빚테크
정부가 각종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한은이 기준금리까지 올리면서 앞으로 대출받기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가뜩이나 가계대출 조이기로 대출받기가 까다로운 상황에서 대출금리마저 오르면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신호로 시장금리가 이미 많이 오른 상태라 이번 금리 인상 효과로 대출금리가 곧바로 크게 움직일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은이 금리를 올린 직후인 1일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연 3.59~4.70%, 3,54~4.54%로 0.03%포인트, KEB하나은행은 연 3.629∼4.629%로 0.038%포인트 떨어졌다. 금융채 5년물의 3일치 평균 금리가 2.57%에서 2.54%로 0.03%포인트 낮아진 영향이다. 금리 인상 기대감이 반영돼 시장금리가 이미 과도하게 치솟아온 것도 작용했다. KB국민은행은 다음주에 적용될 5년 고정 혼합형 금리를 3.58~4.78%로 0.07%포인트 내렸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오래갈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당장 이달 중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단행되면 곧장 시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하나의 트리거가 돼 대출금리 오름세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주담대 금리 5%시대가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따라서 가계도 금리 정상화와 긴축의 시대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협의회에서 “가계는 차입이나 저축 또는 투자 등에 관한 의사 결정에 있어 이전과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출받기도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 자체적으로 다중채무자 관리를 강화하고 나선데다 신총부채상환비율(DTI)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같은 가계부채 대책 여파로 한도 자체도 줄어들게 됐다. 특히 내년 2월부터 법정최고금리가 현재 27.9%에서 24%로 인하되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취약층 대출을 까다롭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리가 올라가면 신용대출과 카드론, 자동차할부금융 등을 급하게 쓰는 다중채무자와 비은행권에서 변동금리를 이용하는 취약계층의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며 여유가 되는 대로 대출을 우선 갚아나가는 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기업
마케팅 인력 줄이고 조직 슬림화
투자유치 등 실탄 확보도 안간힘
긴축의 시대를 맞아 중견·중소기업들은 선제적인 비용 절감과 더불어 투자유치 등 자금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금융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인건비를 줄이고 조직을 슬림화할 수밖에 없다.
기술개발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을 넓히는 중장기 전략도 중요하지만 당장 채산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한가로운 얘기일 뿐이다. 특히 부채비율이 높아 금리 인상의 직격탄이 예상되는 일부 중소기업들에 구조조정은 ‘생존’의 문제가 된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구조조정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인천광역시에서 가구유통업을 영위하는 A업체는 최근 마케팅 인력 2명을 내보냈다. 또 계열사 형태로 운영하던 실내공사사업부를 본사 영업본부로 통폐합했다.
A업체 관계자는 “가구판매시장에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면서 중소가구업체들은 올해 역성장이 예상되는데 내년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에다 금리 인상이 겹쳐지면서 비상등이 켜졌다”며 “인력감축과 부서 통폐합 등으로 연간 2억원의 비용을 절감해 이자비용으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채 시한폭탄이 돌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자영업은 이미 내년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인건비 절감에 나선 상태다. 금리 인상으로 이 같은 ‘생력화’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설상가상으로 금융부채를 지닌 임대인은 이자비용 상쇄를 위해 임대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어 자영업자들은 이중고를 겪게 됐다. 서울 노량진 고시촌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씨는 “내년 초부터 주문은 기계가 받고 물이나 반찬은 손님이 직접 받아가는 셀프 서비스 형태로 바꿀 예정”이라며 “어떻게든 인건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 매출을 늘리기 위한 전단광고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아울러 자금 확보가 걱정되는 기업들은 투자 유치 등을 통한 실탄 확보에도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소비재를 만들어 국내외에 팔고 있는 C업체는 원부자재 자금 확보와 공장 증설 등을 위해 해외 투자은행 등과 투자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박해욱기자 spooky@sedaily.com
■은행
다중채무자·한계기업 관리 비상
“성장보다 안정” 실적 관리 고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단행으로 금리 인상기로 본격적으로 접어든 가운데 은행들은 내년도 실적 관리를 위해 고삐를 단단히 죄겠다는 입장이다. 비록 금리 인상기에는 순이자마진(NIM)이 다소 확대되지만 그만큼 한계차주의 부실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얘기를 종합하면 기준금리가 인상된다 해도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 변화가 크게 없다는 설명이다. 비록 3개월이나 6개월인 변동금리 대출에 비해 1년여인 정기예금의 기간이 길어 그만큼 예대금리 차이를 누릴 수는 있지만 대출금리가 뛰면 한계가구나 기업의 부실률이 확대돼 적립해야 하는 충당금과 손실 처리해야 하는 금액이 늘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 부행장은 “부실로 인한 손실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은행이 수혜받는 예대금리차에 의한 추가수익과 상충관계”라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특히 금리가 급격하게 인상될 경우 오히려 위험하다”고 말했다.
올해 은행들이 어김없이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것은 순이자마진이 확대되는 가운데 부실률은 줄어든 덕분이었다. 은행권의 순이자마진은 지난해 3·4분기 1.55%에서 올해 1·4분기 1.58%, 3·4분기 1.66%로 확대되는 추세다. 기준금리 인상을 선반영해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예대금리차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부실채권비율은 개선세가 계속됐다. 지난해 3월 말 1.87%였던 부실채권비율은 올해 3월 1.38%까지 떨어졌고 9월 말에는 1.15%로 더욱 낮아졌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상황 면에서 올해가 가장 좋지 않았을까 하고 판단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여신심사 선진화 등 가계부채 관리도 본격화되기 때문에 영업 환경이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가계에서는 다중채무자, 기업에서는 한계기업에 대한 점검 채비를 서두르는 모양이다. 우리은행은 우선 5개 금융기관에 대출이 있는 사람들 파악에 나섰으며 순차적으로 4개·3개를 보유한 차주를 들여다볼 계획이다. 또 다른 은행들도 앞으로 한계기업들에 대해 자율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의 다른 고위관계자는 “고용창출을 많이 하면서도 수익성은 좋지 않은 조선·철강·의류 등 전통 제조업이 가장 우려된다”며 “이런 기업들은 앞으로 경영에 있어 성장성보다는 안전성에 중점을 두도록 해 자율적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정부
미뤄놨던 산업 구조개혁 가속도
소비 위축 고려 재정지출 채비도
6년 만의 금리 인상이 경제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면서 정부 정책 역할의 중요성은 한층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상으로 한계차주와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내수가 위축되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등의 현상이 벌어지면 힘들게 지핀 경제 회복의 불씨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1일 “시장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대비해왔고 정부도 가계부채 등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왔기 때문에 당장 경기에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특히 우리 경제의 해묵은 숙제인 산업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최근 경제 회복세는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의 선전 덕이 큰데 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 전반은 경쟁력이 정체돼 있거나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반도체·전자부품을 제외한 산업생산은 2·4분기 -1.9%, 3·4분기 -0.4%로 뒷걸음질쳤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못 대는 ‘한계기업’ 숫자는 2012년 2,794곳에서 지난해 3,126곳으로 급증했다. 금리 인상은 양극화된 산업구조라는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런 가능성에 대비해 주요 산업들의 경쟁력을 주기적으로 점검해 사업재편을 유도할 계획이다. 과거에는 부실 징후가 뚜렷한 업종 위주로 점검했으나 앞으로는 비교적 견실한 업종도 점검해 부실을 사전 예방하는 데 주력한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들에 무리한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갖고 있다. 일례로 기재부는 장기간 정책자금을 지원받는 한계기업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한계기업 지원 졸업제’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한 기업은 자연스레 도태시키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구조조정”이라고 지적했다.
재정의 역할은 한층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기준금리가 오르면 서민들의 빚 상환 부담이 커지고 소비와 내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민생 부문을 중심으로 재정정책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번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은 2조3,000억원이 늘어난다. 기재부 관계자 역시 “내년 성장률도 3% 정도로 예상되지만 재정 지출 증가율을 경상 성장률보다 높게 가져간다는 목표는 확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