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정두환의 집과 사람] 주택공급과 그린벨트의 가치

정권마다 풀고 또 풀고

'택지개발 용지'로 전락





15대 대선이 막판으로 치닫던 지난 1997년 말, 당시 야당 후보였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필요없는 과감하게 풀고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되는 곳은 국가가 매입, 보존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1971년 첫 지정 이후 30년 가까이 유지돼 왔던 그린벨트 보존 정책의 대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국민의정부는 전국 14개 도시권에 지정됐던 5,397㎢의 그린벨트 전체에 대한 평가를 실시, 2000년부터 7개 중소도시권 전역을 포함해 781㎢을 해제하고 7개 대도시권은 343㎢의 총량 안에서 단계적으로 풀기로 했다.


그린벨트 해제는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 재산권 행사의 길을 터주겠다는 취지였지만 정부의 대규모 임대주택 확대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땅값이 저렴한 그린벨트가 정부로서는 거부하기 힘든 매력적인 택지 공급원이었던 것이다. 다만 정부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더 이상의 그린벨트 해제는 없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마지막’이라던 약속은 정부의 지켜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주택건설 등의 목적으로 654㎢의 그린벨트가 풀렸으며, 이중 67㎢는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건설사업을 위한 토지공급원으로 활용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해제는 계속됐다. 반값 아파트 공약 이행과 지지체 현안 추진을 이유로 해제 총량을 189㎢나 늘렸으며 이중 88㎢을 풀었다.

임대주택 확대 정책과 맞물려

지정 후 지금껏 30%가량 해제

기존 보존시스템부터 점검 필요




역대 정부의 잇따른 해제로 전국 14개 도시권에 지정됐던 5,397㎢의 그린벨트 중 지금까지 해제된 총 면적은 1,543㎢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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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역시 결국 그린벨트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발표한 9곳의 택지개발 후보지에는 그린벨트가 대거 포함됐다. 특히 성남 복정·의왕 월암·남양주 진접 등 수도권 8개 후보지 총 면적 480만4,000㎡ 중 그린벨트는 70%인 336만1,000㎡에 이른다.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환경 파괴 우려가 제기되자 정부는 환경 보존 가치가 낮은 곳인데다 해제 총량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어서 ‘사회적 합의의 틀’ 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훼손됐다는 이유만으로 그린벨트를 무차별적으로 푸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첫 해제 이후 그린벨트에 대한 정부 정책의 원칙은 “풀 곳은 풀되, 남은 땅은 철저하게 보존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존가치가 낮은 그린벨트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정부가 훼손을 방치하고 있다는 의미다. 훼손의 정도가 복구 불가능한 수준인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총량 범위내 해제라는 ‘사회적 합의’가 곧 고밀도의 대규모 아파트 개발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남아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그린벨트 지정의 목적으로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또는 서로 인접한 도시의 시가지로의 연결을 방지’를 언급하고 있다. 자연환경 보존 못지 않게 중요한 그린벨트의 기능이다.

정부가 강력한 수요 억제책과 함께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조기에 공급 확대로 정책을 선회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땅이 부족하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쟁적으로 파헤칠 만큼 그린벨트가 존립 가치를 잃은 것은 아니다. 그린벨트를 풀기에 앞서 기존 보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개발이 가져올 득과 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할 때다.

/건설부동산부문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

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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