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보장성을 60%대에서 70% 선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문재인케어’가 취임 후 첫 예산심사 과정에서부터 제동이 걸렸다. 여야는 4일 내년도 예산안 합의를 통해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액을 정부 예산보다 2,200억원 줄이기로 합의했다. 미용과 성형을 제외하고 비급여 진료에 대한 급여화를 확대해간다는 게 문재인케어의 골자지만 시행 첫해부터 재정확보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정부가 당초 편성한 건강보험 국고지원액은 7조2,000억원. 이는 올해의 6조8,000억원보다 4,300억원 늘어난 액수였지만 건보료 예상수입액의 14%를 국고로 지원하도록 하는 건강보험법상 규모보다 6% 부족한 상태였다. 여기에서 여야가 관행을 이유로 2,200억원을 추가로 줄이다 보니 보건복지부 측은 재정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복지부 측 관계자는 “3%의 보험료율 인상을 예상했지만 올해 겨우 2.04% 인상에 그쳤다”며 “예산까지 줄어들면 장기적 측면에서 재정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내년도 건강보험 예산은 건강보험 적립금과 정부 국고 지원을 합해 올해보다 3조7,000억원이 더 배정됐다. 특히 보장성 강화 항목은 시간을 두고 확대돼 적립금 추가 지출 규모가 매년 늘어 2017~2022년 무려 30조6,000억원을 더 쓸 것으로 전망된다. 국고지원이 줄어들면 건보 적립금에서 더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비록 내년 정부 지원금 확대는 물 건너갔지만 국고지원금을 더 확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 우선 현재 쌓여 있는 건보 누적적립금으로 보장강화 정책 추진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재정 추계’ 분석에서 문재인케어가 실시되면 당장 2019년부터 건보 당기수지가 적자로 전환되고 2026년에는 적립금마저 고갈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남북협력기금의 경우 정부가 내년도 일반회계로 제출한 1,200억원 중 400억원을 감액하기로 여야가 의견을 모았다. 북한이 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5형’을 발사하는 등 도발을 감행하자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이 한발 물러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남북협력기금은 일반회계를 포함해 당초 정부안인 1조462억원에서 837억원이 삭감된 9,642억원으로 확정됐다. 남북협력기금은 일반회계 민생협력 지원, 개성공단 기반 조성 등 총 10개 항목으로 돼 있다. 그간 자유한국당 등 야권은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을 지적하며 일반회계 전액 삭감을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전액 삭감하게 되면 박근혜 정부 때보다도 예산이 적어진다”고 반대했지만 결국 의견을 굽히며 박근혜 정부가 편성한 올해 예산안보다도 약 3억원 줄어든 금액에 합의했다.
아동수당도 기존 정부 예산안보다 후퇴했다. 당초 정부는 내년 7월부터 만 6세 미만 아동 253만명에게 월 10만원을 주는 등 아동수당 지급을 위해 1조1,009억원의 재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시행시기를 내년 7월로 할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 이용될 수 있다는 한국당의 반대로 시행시기가 9월로 미뤄졌다.
국민의당의 요구로 지급 대상에 소득 상위 10%가 제외됐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당초 정부안대로 통과됐지만 2019년부터 내년 예산안 규모를 초과할 수 없다는 단서가 달렸다.
예산 부수법안으로 법인세법과 함께 여야 간 대립이 컸던 소득세법의 경우 정부안이 유지됐다. 소득세의 경우 여당은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3억∼5억원은 40%, 5억원 초과는 42%로 각각 2%포인트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에 대해 야권은 “1년의 유예시간을 갖자”며 맞섰다. 민주당은 1년의 시간을 갖자는 야당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법인세법을 원안대로 처리하려 했지만 법인세 최고세율 구간을 완화하자는 야당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소득세법은 원안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