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이슈&워치]서비스업수지 사상 최대 적자인데…24시간 카풀도 못풀어

지난달 우리나라 서비스산업 경상수지가 역대 최대 규모 적자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10일에 달했던 황금연휴를 맞아 해외로 떠나는 국내 여행객이 늘면서 10월 서비스수지는 35억3,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고다.

정부는 당초 황금연휴를 최대한 활용해 내수를 진작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국내 관광 활성화 방안과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를 본뜬 코리아 세일 페스타 등을 앞세웠다. 하지만 여행객은 국내가 아닌 해외로 대거 빠져나갔고 코리아 세일 페스타는 전년보다 매출이 5.1% 느는 데 그쳐 사실상 실패라는 여론이 우세하다. 장밋빛 전망만 가득했던 황금연휴 내수진작책이 헛물만 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전반적인 내수 활성화 정책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지적도 많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별도의 내수 활성화 대책은 내놓지 않은 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소득을 끌어 올려주면 소비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인위적인 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소비 등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최저임금 1만원 만들기’ 정책은 2020년까지 소비를 17조8,000억원 감소시킬 것이라는 국회예산정책처와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의 분석도 있다.

내수를 확대하려면 결국 서비스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 제대로 된 청사진은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인 규제 개선에는 손을 놓고 있거나 미적거리고 있다.





일례로 금융산업의 경우 개발 경제 시대 규제인 ‘은산분리’나 ‘전업주의’ 등 규제가 버젓이 남아 있다. 은산 분리는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막는 것이고 전업주의는 은행·증권사·보험사 등이 고유 업무만 하도록 한 것이다. 이들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신기술 도입을 통한 혁신은 뒷전으로 한 채 예대마진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산업의 근본적인 도약을 위해 이제는 이들 규제를 손볼 때가 됐다는 지적이 많지만 정부는 대기업에 특혜만 줄 것이라는 논리로 언급 자체를 쉬쉬하는 분위기다.


우버·에어비앤비 등의 성공으로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는 공유경제는 발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공유경제 산업을 시도하려면 ‘택시운전사 등 사업자만 유상으로 운송할 수 있다’는 등의 규제를 없애야 하지만 정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유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운송사업법을 전면 개정해야 하지만 택시 업계의 반발이 워낙 심해 당장 실행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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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자체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하는 의료 분야는 어떤가. 높은 기술을 부가가치 창출로 연결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지적된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원격 진료, 유전자 치료 규제 완화 등은 수년째 당위성만 강조되고 제대로 된 액션플랜이 없다. 정부가 이달 발표할 서비스산업 혁신 대책에도 이들 분야의 규제 개선 방안은 포함되지 않을 전망이어서 ‘앙꼬 빠진 찐빵’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빅데이터 분야에서도 주요 개인정보를 비식별 처리 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 우선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 하나로 산업 전반의 규제를 개선하는 ‘서비스발전기본법’이나 ‘규제프리존특별법’ 역시 수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데 정부는 ‘국회에서 논의할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정부 때는 이들 법안에 대해 기재부 공무원이 수시로 찾아와 통과 필요성 등을 설명했는데 이번 정부 들어서는 그런 움직임이 거의 없다”며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비스산업 혁신을 위해서는 기존 기득권자들의 이익만 공고히 하는 진입장벽·규제를 타파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기득권의 독점을 야기하는 진입장벽·영업규제를 타파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기득권 타파를 위한 규제 개선은 일부 영업규제 위주로 푸는 것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의사·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종의 높은 진입 장벽과 택배·화물차·택시 등 증차 규제 같은 굵직한 주제는 안 건드린다는 얘기다.

정부가 규제 개선을 망설이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유를 부리기에는 우리 서비스산업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서비스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59.1%로 영국(80.2%), 미국(79.9%) 등과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중국(51.6%)보다는 높은데 이마저도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2010~2016년 서비스산업 연평균 성장률을 보면 중국은 8.5%로 우리나라(3.1%)를 크게 앞서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모든 규제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는 합리화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라며 “혁신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서비스업 등의 규제 합리화 방안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서민준·나윤석·빈난새기자 morandol@sedaily.com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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