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금지한 6일. 시장의 반응은 예상 밖이다. 어차피 가상화폐를 유사수신행위로 보고 거래를 막은 상황에서 선물 거래를 금지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다만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장에 이제 막 발을 내디디려 했던 증권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위해 전산 시스템을 마련하는가 하면 미국 중개회사와 수수료 협상을 하는 등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지만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모든 준비가 무산됐다.
이날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지난 5일 국내 증권사들에 비트코인 선물 거래와 관련한 준비 작업을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금융 당국은 “비트코인 선물은 기초자산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측해 헤지(hedge)를 하는 것인데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들을 기초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어 선물 거래도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자본시장법 제4조 10항에 따르면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은 △금융투자 상품 △통화 △농산물·축산물이나 이를 제조·가공한 일반상품 △신용위험 △자연·환경·경제적 현상 등에 속하는 위험으로서 적정한 방법에 의해 가격·이자율·지표·단위 산출이나 평가가 가능한 것이다. 금융 업계 관계자는 “당국에서 가상화폐 기초 파생상품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 상황에서 투자자를 무리하게 모집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13년부터 국내에서 시작된 비트코인의 현물 거래는 사설 거래소를 통해 가능하다. 특히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위안화 출금을 제한하자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를 출금창구로 사용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측은 국내에 거래되는 가상화폐 중 30% 이상이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가상화폐의 환치기 우려도 제기된다.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중국인들이 비트코인을 원화로 판 후 매도대금을 대림동 등에서 위안화로 바꿔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가상화폐 투기도 규제에 밀려 해외로 빠져나가 외환시장에 혼란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트코인 선물 거래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있다. 변동성이 선물시장을 흔들 수도 있지만 시장 상황에 맞춰 매도·매수 포지션을 잡아 리스크(위험)를 헤지할 수 있고 과도한 투기거래를 막을 수도 있다. 물론 선물시장에서 비트코인이 여타 상품들의 변동성을 커지게 하는 왝더독 현상이 우려되기도 한다.
선물시장 오픈을 준비하던 증권사들은 기존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도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 증거금률·거래비용 등에 대해 미국 중개회사와 논의하고 있었다. 비트코인은 주식과 달리 가격제한폭(30%)이 없어 하루에도 가격 등락폭이 매우 커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는 위험을 헤징할 수단이 필요한 만큼 이에 대한 대비책도 검토하는 단계였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가상화폐의 현물 거래를 유사수신행위로 분류하고 선물 역시 거래를 허용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이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허용하지 않는 데 대해 기관투자가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연초 대비 1,000% 가까이 오른 비트코인을 비롯해 가상화폐에 기관들의 투기적 거래가 유입될 경우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안에서 막는다고 해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투기성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가상화폐가 한국에서 환치기의 대상이 되듯 국내 투기 세력도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가상화폐공개(ICO)를 통해 발행되는 디지털토큰은 2016년부터 급증해 올해 상반기에만 10억달러를 기록했다. 각국 정부는 ICO 규제 만들기에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7월부터 디지털토큰의 발행을 증권법상의 증권 발행으로 보고 증권법에 따른 규제를 시작했다. 이미 몇몇 곳은 증권법 절차를 거쳐 ICO를 진행했다. ICO를 제도권 내로 끌어들인 셈이다. 스위스·에스토니아·지브롤터 등의 경우 규제가 없거나 느슨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상화폐의 투기는 해외로 이동해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새로운 금융기술은 수익률에 광풍이 불면 소비자 피해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최선의 정책을 선택해야 하지만 논쟁의 여지가 있다면 차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산업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