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B 기관장은 자신이 속한 한 사모임에서 ㄴ씨에 대한 인사 청탁을 받았다. 대놓고 뽑자니 주변 눈치가 보였던 B씨는 면접위원 구성을 손보기로 했다. 심사위원 5명 중 3명을 사모임 회원으로 꾸렸다. 결국 ㄴ씨는 무난히 면접을 통과했고 B씨는 인사위원회 심의 절차 없이 바로 채용했다.
# 2016년 D 기관은 의도적으로 채용공고를 공공기관 공시 시스템인 ‘알리오’에 올리지 않았다. 오로지 모 협회 홈페이지에만 눈에 띄지 않게 게시했다. 결국 비공개 채용에서 뽑힌 직원들은 대부분 전직 임원 출신이 알선하거나 추천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정부가 8일 발표한 채용 비리 특별점검 중간 결과 앞선 사례를 포함해 무려 2,234건의 지적 사항이 추가로 적발됐다. 유형별로는 위원 구성이 부적절한 사례가 527건으로 가장 많았다. 관련 규정이 없는 경우도 446건이나 됐다. 모집 공고에 문제가 있거나(227건) 부당한 평가 기준을 적용한 사례(190건)도 상당수 발견됐다. 선발 인원의 임의 변경도 138건에 달했다.
정부는 금품수수나 청탁금지법 위반, 문서 위·변조, 허위사실 유포 등을 기준으로 문제가 있는 44건은 수사를 의뢰했다. 또 전수조사에서 중대한 비리 혐의가 나오거나 유독 신고 접수가 많았던 기관, 비정기적인 특채가 빈번한 기관 등 19곳은 오는 22일까지 부처 합동 조사를 진행한다. 이에 따라 전·현직 기관장이 직접 연루됐거나 법적 책임을 질 상황에 놓일 경우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기관장 교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적발 사례를 보면 기관장의 경우 직접 인사담당자에게 지시해 인사청탁을 받는 경우가 가장 빈번했다. 2011년 모 기관장은 공채 없이 지인에게 소개 받은 지원자를 특별채용한 뒤 계약기간이 끝날 때쯤에는 아예 승진을 시켜 재임용했다. 같은 해 또 다른 기관장은 지인 자녀의 이력서를 직접 인사담당자에 건네주며 뽑으라고 지시했고 인사담당자는 명령대로 채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기까지 했다.
심사위원을 임의대로 구성하거나 면접 전형 원칙을 무시하는 꼼수도 있었다. 2013년 한 기관은 인적사항을 가리고 진행하는 블라인드 면접에서 해당 기관 임원 자녀들의 인적사항을 면접관에게 미리 귀띔했다. 이 자녀들은 높은 면접점수를 받았고 부모님과 한 회사에 다닐 수 있었다. 2016년에 또 다른 기관은 애초 면접위원도 아닌 사람이 면접관으로 갑자기 등장했다. 당시 2명이 함께 면접을 보는 식이었는데 이 면접관은 오직 1명에게만 질문했고 이 지원자는 최종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채용담당자가 의도적으로 점수를 조작해 특정인을 뽑거나 단 한명을 뽑는 전형에서 내정자를 채용하기 위해 5배수 정도만 추리던 면접자를 무려 45배수까지 확대한 경우도 적발했다. 원하는 사람을 뽑고 싶을 때는 경력증명서나 졸업증명서 같은 필수 서류가 없어도 합격시켰고 채용공고 때 내건 자격 조건도 ‘낙하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이번 중간 결과 발표를 계기로 더 많은 제보가 몰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전수조사 결과를 보완하기 위해 진행 중인 관계부처 합동 심층 조사에서 전 부처가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강원랜드와 금융감독원 등 주요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자 지난 10월 말 공공기관의 최근 5년치 채용을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11월까지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조사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중간 발표에서 많은 비위가 드러난 만큼 채용 비리가 다수 기관에서 폭넓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행정안전부와 권익위가 각각 전수 조사 중인 824개 지방 공공기관과 272개 공직 유관단체 점검을 이달 마무리한다. 이번 점검 결과를 토대로 이달 중 감사 체계 정비, 처벌 강화 등 법·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