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언에 대한 분노가 세계 각국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이집트 등지에서는 미국의 결정에 대한 반감이 맥도날드 등 미국 기업들을 향한 불매운동으로 번졌으며 중동·아프리카·동남아시아 등 무슬림 국가는 대규모 반미시위로 뒤덮였다. 아랍권의 ‘공공의 적’이 된 미국은 그럼에도 이번 선언이 ‘믿음’의 문제라며 결정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 후폭풍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11일(현지시간) 현지 일간 더스타에 따르면 인구의 61%가 이슬람교도인 말레이시아에서는 미국의 대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맥도날드에 대한 불매운동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확산되고 있다. 맥도날드가 이스라엘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맥도날드의 말레이시아 운영을 맡은 게르방알랍 레스토랑은 “우리의 최대주주는 무슬림”이라며 해명에 나섰지만 분노한 시민들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집트에서는 이날 의사협회 회원들이 미국산 의료기기와 의약품 사용을 중단하고 대체품을 찾겠다고 선언했다. 이집트 의사협회는 “모든 아랍 국가와 시민들에게 불명예스러운 결정이 폐지될 때까지 불매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르단에서도 전문직협회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을 위한 미국과 이스라엘산 제품 리스트를 작성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는 레바논·모로코·이집트·요르단 등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을 넘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무슬림 국가들까지 크게 확산되고 있다.
각국에서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한 반(反)유대 정서도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스웨덴에서는 제2도시 예테보리의 유대교회당이 화염병 공격을 받아 10일 3명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목격자들은 9일 마스크를 착용한 젊은이 수십명이 화염병으로 보이는 물체를 유대교회당 정원으로 던졌다고 전했다. 사건 당시 유대교회당 안에서는 청소년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는 “스웨덴 사회에서 반유대주의가 설 자리는 없다”며 “범인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선언’ 이후 전 세계가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변하자 일부 정상들은 미국을 향해 강도 높은 ‘작심 발언’을 하고 나섰다. 10일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국제법에 어긋나고 평화협상에도 위험해 반대한다”며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즉각 중단하고 팔레스타인과의 신뢰를 구축할 평화적 해법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예루살렘은 3,000년 동안 이스라엘의 수도였고 이는 성경에도 나온다”며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강조한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을 면전에서 반박한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냉랭한 분위기는 11일로 예정된 유럽연합(EU) 외무장관회의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레지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 중부도시 시바스에서 한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을 “아무 가치도 없고 무효”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이스라엘을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하며 두 나라에 대응하기 위한 무슬림 국가들의 단합을 촉구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거센 후폭풍에도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데이비드 새터필드 국무부 중동담당 차관보대행은 10일 아랍 언론들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결정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