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일인 지난달 23일 이준식 수능 출제위원장은 영어 난이도에 대해 “1등급 비율은 6월과 9월 모의평가 수준에서 유지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교육 업계에서는 평가원이 영어 1등급 비율 목표를 6~8%로 설정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영어 1등급 비율은 10.03%로 상대평가 때 2등급까지의 비율(상위 11%)에 육박했다. 1등급 수는 무려 5만2,983명에 달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서울 상위 15개 대학에 입학하려면 영어 1등급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상위권에서는 영어 변별력이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평가원은 영어 난이도 조절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11일 브리핑에서 시기자 평가원 수능기획분석실장은 영어 난이도에 대한 질문에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학생들의 높은 실력을 원인으로 꼽았다. ‘9월 모의평가 이후 불과 몇 개월 만에 학생들 실력이 늘었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졸업생 비율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사회탐구도 마찬가지다. 상위권 학생이 주로 응시하는 경제는 만점자 비율이 11.75%로 2등급까지의 비율(11%)을 훌쩍 뛰어넘어 아예 2등급이 없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경제에서 한문제만 틀리더라도 바로 3등급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입시 업체의 한 관계자는 “경제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높은 표준점수를 받으려 응시하는 과목”이라며 “이번에 너무 쉽게 출제되면서 경제를 선택한 학생이 손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사회탐구영역에서는 한국지리, 세계사, 사회·문화 3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6과목이 모두 최고점수와 1등급 점수가 같은 이례적인 현상도 발생했다. 이들 여섯과목은 단 한문제만 틀려도 바로 2등급으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인문계 학생이 주로 치르는 수학 나형의 1등급(4%) 비율이 7.68%에 달하는 것도 난이도 조절 실패의 단적인 사례다. 소위 난이도 조절용 문제가 전혀 기능하지 못하면서 동점자가 속출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