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퍼트리샤 드릴 시장이 굳은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그의 입에서는 “수도꼭지가 마르고 주민들이 물을 얻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현실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흘러나왔다. 내년 5월20일이면 저수량이 바닥나 물 공급이 중단되는 ‘데이 제로(Day Zero)’가 온다는 호소도 있었다. 시민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지난 3년간의 가뭄으로 수없이 들어온 경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름 후 경고가 현실로 나타났다. 시는 8,000만원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주민들에게 내년 2월부터 3년간 월 2,800원(35랜드)의 ‘가뭄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물 부족의 심각성이 그제야 케이프타운 주민들의 피부로 파고들었다.
가뭄세를 도입한 곳이 케이프타운만은 아니다. 급격한 기후 변화와 산업화에 따른 수자원 고갈을 막기 위한 비상수단은 지구촌 곳곳에서 마련되고 있다. 영국 버밍엄은 지난해 11월 월 3만4,000ℓ(8,977갤런) 이상을 쓴 주민들에게 추가 사용량 요금을 110% 올렸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도 2015년 3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2,831ℓ당 75센트와 1달러30센트의 요금을 추가로 징수했다.
물을 확보하기 위한 사투 앞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도 작아진다. 1998년 5월 아프리카의 소국가 레소토가 총선 결과를 둘러싸고 내란 위기에 처했다. 레소토는 남아공에서 매년 3,500만달러를 받고 카체(Katse)댐에서 초당 30㎥의 물을 공급하는 나라. 남아공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은 댐을 지키기 위해 600~800명 규모의 군대를 파병했고 폭동과 반란은 진압됐다.
우리나라도 물 부족을 막기 위한 대열에 합류했다. 행정안전부는 12일 가뭄 예보·경보시 물을 전년보다 많이 사용하면 요금을 추가로 징수하고 절감하면 깎아주는 ‘가뭄 요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누진요금제도 강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먼 나라 일로만 보였던 가뭄세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물 부족 국가인 줄 알면서도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쓴 대가다. 그래도 남아공처럼 ‘데이 제로’의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 /송영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