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겨울진객 대구



입이 크다 해서 이름 붙여진 대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즐겨 먹는 생선이다. 영국의 대표 음식으로 흔히 ‘생선가스’로 불리는 ‘피시&칩스’의 생선이 바로 대구다. 녀석들은 알류샨열도와 알래스카 등 찬 바다에 서식하다 12~2월 산란을 위해 남쪽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 해역에는 부산 가덕도와 거제도 사이에 어장이 형성되는데 산란기를 맞아 살이 통통하게 오른 지금이 제철이다. 주산지인 남해안 지방에서는 ‘동지(冬至) 대구는 사돈댁에도 보내지 않는다’는 옛말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대구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두툼하고 담백한 살은 탕으로도 좋고 전으로 부쳐 먹기에도 알맞다. 설날 제수상에 오르는 어전이 대구포전이다. 뼈와 알은 내장과 함께 푹 고아내면 매운탕으로 제격이다. 역시 진미는 볼때기 살. 아가미 부위에 붙은 볼때기 살은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관련기사



서양에서 대구는 역사를 바꿨다. 바이킹은 일찍이 대구 건조법을 터득했기에 대양 원정이 가능했다. 이들은 튼튼한 배와 말린 대구로 멀고 험한 바닷길을 뚫고 콜럼버스보다 훨씬 전에 신대륙을 발견했다. 청교도의 신대륙 이주, 식민지 시절 미국의 경제력 신장 배경에는 대구 무역이 있었다. 대구가 카리브해 사탕수수농장에 끌려온 흑인 노예의 식량으로 제공되면서 노예 무역의 번창을 낳기도 했다. 국제법상 영해의 기준인 12해리는 20세기 중반 영국과의 대구전쟁에서 승리한 아이슬란드가 설정한 12해리 배타적 수역에서 유래했다.

대구는 우리 바다에서 남획으로 자취를 감췄다가 겨우 복원해낸 생선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겨울철 국민 생선으로 각광받았지만 이후 20여년간 여간해서는 구경하기도 어려웠다. 그 시절 큰 녀석 한 마리가 40만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씨가 말라 현상금까지 붙은 명태 꼴이 날 뻔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기적처럼 되돌아왔다. 인공 수정란 방류와 1월 금어기 설정 등이 주효한 결과다. 1990년 487톤까지 줄었던 어획량은 2010년대 들어 해마다 1만톤을 오간다. 이번 시즌에도 제법 잡힌다고 한다. 무한한 것 같은 바다지만 역시 돌본 만큼 되돌려주는가 보다. /권구찬 논설위원

권구찬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