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올라도 우리 가계와 기업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이라 평가했다. 막대한 가계 빚을 금리 인상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해온 한은이 입장을 선회하면서 내년 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기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에도 세 차례 인상을 시사하면서 한미 간 금리역전 가능성이 커져 한은 내에서도 ‘매파(긴축 선호)’적 기조가 힘을 얻는 분위기다.
14일 한은이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전체 차주의 소득 대비 연간 원리금상환액비율(DSR)은 평균 1.5%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처분가능소득이 연 5,000만원이라면 1년간 원리금으로 75만원을 더 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한은은 100만명 규모의 미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DSR 상승폭이 1%포인트 미만인 차주가 전체의 60.9%로 대부분을 차지해 추가 이자 부담은 대체로 크지 않다고 밝혔다. 기업의 추가 부담도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한은에 따르면 기업 평균 차입금리가 3.51%(올 상반기 기준)에서 4.51%로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연간 이자부담액이 14.2% 증가하면서 이자보상배율이 9.0에서 7.9로 하락한다. 하지만 2012~2016년 평균 4.8에 비하면 높은 수준으로 “여전히 양호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한은은 이 결과를 토대로 “가계와 기업 모두 금리 1%포인트 상승에 따른 채무상환부담의 증가 정도가 대체로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취약차주 채무상환부담과 가계소비 위축을 우려해왔던 한은이 낙관적인 평가로 돌아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한은이 지난달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도 추가 금리 인상은 신중히 판단하겠다고 강조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매파적 입장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1,400조원을 훌쩍 넘어선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정부의 각종 대책으로 증가속도가 다소 둔화됐지만 여전히 소득에 비해 빠르게 늘고 있다.
한은의 분석을 봐도 상환능력이 취약한 가계와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채무상환부담이 커질 것은 분명하다. 소득 하위 30% 저소득층이나 나이 50세 이상, 자영업자의 경우 DSR가 5%포인트 이상 급증하는 비중이 높아 금리 상승에 따른 충격이 상대적으로 컸다. 고위험대출 보유자나 취약차주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9월 말 기준 자영업자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총 60조원을 넘어선 것도 경종을 울린다. 부동산시장 호조에 부동산·임대업 대출이 급증하면서 1년 사이 42.3%나 불어난 결과다.
저금리 하에서 적극적으로 대출을 늘려온 다주택자도 금리 인상의 고통을 피하기 어렵다. 한은에 따르면 다주택자는 198만명으로 늘어 전체 주택의 32%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레버리지 비율(4.7배)은 1주택자보다 50% 이상 높아 금리 상승 부담이 더 크다. 신운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기존 부채가 많았거나 변동금리 대출을 탄 가구는 금리 인상에 따른 추가적인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시장의 우려를 부인하지 않았다.
시장도 내년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김진평 삼성선물 연구원은 “한은은 예전에도 각종 자료를 통해 금리 결정의 근거를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보고서만 보면 한은 내 전반적인 기조가 ‘매파적’으로 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