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은 ‘슬픈 홍문연(鴻門宴)’이었다. 시 주석을 정점으로 중국 관료들은 예리한 ‘사드 칼날’을 우리 정부에 겨눴지만 우리는 중국에 이렇다 할 대북 압박 방책을 결기 있게 요구하지 못했다. 경협이 재개될 것이라는 신호를 얻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북 압박을 위한 중국의 행동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했다. 굴욕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며 고압적이었다. 권력서열 3위의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양국은 사드의 단계적 처리에 의견을 같이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문 대통령의 이번 방중을 성사시켰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문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격려라도 하듯 문 대통령을 툭툭 쳤다. 국빈방문을 수행한 한국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했는데 ‘중국 정부와 상관없다’며 사과를 거부했다. 미국과 어깨를 같이하며 주요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오만이다.
서경 펠로(자문단)인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은 “홀대 논란은 중국이 갖고 있는 대국 의식에서 본다면 또다시 표출될 수 있다”며 “한국은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외교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한중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 정부는 더듬이를 잃은 메뚜기처럼 허둥거렸다. 중국이 우리를 부당하게 때리면 중국도 아프게 된다는 ‘고슴도치 전략’은 어디에도 없었다. 문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북한 압박을 위해 원유공급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일었지만 희망 사항에 그쳤다. 대신 전쟁 불가를 핵심으로 하는 한반도 안정 4대 원칙에 덜컥 합의하고 말았다. 북한의 태도변화를 위해 필요한 군사적 옵션 카드를 스스로 내다 버리는 자충수를 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아마겟돈 상황은 피해야 하는 것이 절대 진리이지만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 없애버린 꼴이 됐다. 핵 폭주를 일삼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에 다시 나설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준 것과 진배없다.
한국·일본·대만으로의 핵 확산을 원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북한 핵을 통제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했는데 문 대통령은 침묵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대북 제재와 압박에 초점이 맞춰져야 했는데 구체적인 방안이 전혀 없었다”며 “한미동맹·한일협력 차원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촌평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이 우리를 때리거나 무시하면 중국도 피를 흘릴 수 있다는 단호한 의지와 배짱을 보여야 한다. 고슴도치의 ‘가시’를 세워야 한다. 중국이 대북 제재에 미온적으로 나올 경우 우리는 상호확증파괴(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지 중국이 ‘앗 뜨거워’하고 움직인다.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처럼 미국과 핵을 공유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과 맺은 원자력협정을 일본 수준으로 개정해 핵 재처리를 승인받고 언제든지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필요도 있다. 힘을 애써 감추는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주동작위(主動作爲)로 외교노선을 급선회한 중국에 맞서기 위해서는 ‘순둥이’ 외교 틀을 깨야 한다. 사드 경제보복도 종결된 것이 아니다. 사드 배치를 지속하거나 추가로 들여올 경우 중국이 보복의 칼을 들이밀 위험이 남아 있다.
이번 기회에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확실히 낮추고 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 대안 시장을 적극 찾아야 한다. 최근 2년간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을 당한 대만이 동남아로 눈을 돌리는 신남향 정책으로 맞서고 있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신남방 정책도 이 같은 불안요인을 고려해 정교하게 짜야 한다.
1970년대 이스라엘 총리를 지낸 여장부 골다 메이어는 국민들에게 “우리는 아랍과의 전쟁에서 최종병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면 끝장’이라는 절박함”이라고 호소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완성은 3개월 정도면 가능하다고 한다. 40년 전의 이스라엘보다 우리가 더 위험하고 절박하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야말로 한국의 ‘핵심 이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해서는 핵 억지력에 나서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내보여야 한다. 리 총리는 한중관계의 따뜻한 봄날을 기대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의 언어유희에 춤을 춰서는 안 된다. 징비록을 쓴 유성룡은 “행군하는 것이 마치 봄나들이 가는 것과 같으니 어찌 패하지 않겠는가”라며 조선의 임진왜란 상황인식을 질타했다. 문 대통령이 새겨들어야 할 죽비다. 봄기운에 태평화(花)가 피었다고 오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