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종광(46·사진)이 신작 ‘조선통신사 1·2’를 들고 돌아왔다. ‘별의별’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제목 그대로 지난 1763년 바다 건너 일본으로 떠난 통신사의 기행(紀行)을 다뤘다. 작가 특유의 풍자와 해학, 입담은 여전하지만 ‘조선통신사’의 형식과 내용에는 김종광의 새로운 모험과 도전이 담겨 있다. 조선통신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소설이라고 할 만한 이 작품은 우선 주인공과 보조 인물을 구분하기가 애매하다. 특별히 본받고 싶은 영웅도, 가차 없이 처단하고 싶은 악당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문신(文臣)과 역관, 노비와 소동(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소년)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선봉에 선 주인공이 따로 없다 보니 자연히 서사 구조도 단일한 기승전결의 흐름이 아닌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신작 출간을 맞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김종광은 신작 소설에 대해 “왕후장상과 영웅호걸이 나오지 않는 역사소설을 쓰고 싶은 야심으로 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홍명희 선생님의 ‘임꺽정’을 한국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작품을 보면 임꺽정이라는 인물은 깡패나 다름없어요. 작가는 감상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고 냉정하고 차분한 시선으로 인물을 그려내고 있어요. 통신사 행렬의 이야기는 출중한 능력을 지닌 영웅을 미화하지 않고 밑바닥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에 안성맞춤인 소재였습니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일본에 12차례 파견된 외교사절이다. 김종광의 소설은 그중 계미(癸未)년인 영조 39년(1763년)에 떠나 흔히 ‘계미통신사’로 불리는 제11차 통신사를 다뤘다. 김종광은 당시 일본을 다녀온 문신과 학자들이 남긴 ‘해사일기’와 ‘승사록’을 참고하되 허구의 인물과 서사 장치를 집어넣어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는 특출 난 주인공과 드라마틱한 서사 구조를 버리는 대신 판소리와 마당극의 형식을 빌어 작품의 독창성을 높이고자 했다. ‘조선통신사’는 기본적으로 작가의 전지적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종놈 삽사리와 소동 임취빈, 군관 민혜수 등 10명 가량의 인물들이 마치 소리꾼처럼 중간중간 화자의 지위를 얻어 그들이 보고 느낀 바를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다.
“한국 역사소설을 보면 작가의 목소리가 개입된 영웅의 말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반대로 여러 인물의 목소리를 균등하고 공평하게 모아 전체적인 진실에 다가서고 싶었습니다.”
‘판소리체 이야기를 마당극과 같은 흥겨운 느낌으로 풀어낸 작품’이라는 작가의 설명대로 이 소설은 밝고 유쾌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통신사 일행으로 고락을 함께한 동지가 곁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는 쓸쓸한 정조가 감돌고 하찮은 신분의 평민이 양반을 향해 욕지거리를 쏟아낼 때는 엄숙한 무게감이 도드라지지만 작품 전반에 깔린 긍정의 에너지를 해치지 못한다. 작가는 “나의 기본적인 세계관에서 비롯된 유머와 해학은 어떤 소재의 작품을 쓰든 버릴 수 없는 무기”라고 귀띔했다. “초상집에 가도 밥 먹고 술 마시며 웃고 떠드는 것이 우리네 삶이잖아요. 아무리 슬퍼도 웃으며 헤쳐갈 수밖에 없지요. ‘웃프다(웃기고 슬프다)’라는 신조어는 희비극이 공존하는 삶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정확한 단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김종광은 ‘조선통신사’의 이야기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글을 썼을까. 그는 강대국들의 틈새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이 소설을 통해 외교적 해법의 실마리를 찾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수줍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조선통신사는 사실 문화 교류의 측면보다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더 가까웠어요. 물론 한일 양국의 왕래는 청나라의 묵인 내지는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당시 조선이 일본과 청나라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기 때문이지요.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정치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지만 우리 정부도 ‘평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외교적으로 슬기롭게 대처를 해나갔으면 합니다.” 사진제공=다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