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KB금융지주에 따르면 계열사인 KB부동산신탁에 비은행 부문 강화를 위한 명분으로 자문역할을 할 부회장직을 신설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KB금융에서 지난 2008년 지주사를 설립한 이래 부회장직을 마련한 것은 2010년 김중회 전 KB금융지주 사장을 KB자산운용 부회장으로 영입한 후 이번이 두 번째다. 조직 내부에 최고경영자(CEO) 위에 부회장직을 두는 게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전례가 많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신설되는 부회장직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으로 대표적인 친노 금융인사로 분류되는 김정민 전 KB부동산신탁 사장(현 케이리츠앤파트너스 대표)이 내정되면서 낙하산 인사를 위한 ‘자리 만들기용’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 내정자는 내년 1월2일자로 선임될 예정이다. 김 전 사장은 1951년 경남 사천 출생으로 1970년 국민은행에 입행해 2003년 검사부장, 2004년 11월 HR그룹 부행장 등을 지냈다. 특히 노조위원장 출신에다 부산 출신 금융인이어서 9월 윤종규 회장 연임 과정에서 경쟁 관계에 있던 인물이다. 일부에서는 KB금융이 증권과 카드에도 부회장직 자리를 만들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KB금융은 한사코 이를 부인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에 음으로 양으로 부회장직 신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KB금융이 비판여론을 의식해 최소한으로 부회장직을 신설하는 것으로 마무리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KB금융이 오죽했으면 친노 인사 영입에 나섰겠느냐는 동정론도 나온다. 실제 KB금융은 윤 회장 연임 과정에서 임원이 노조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이 두 차례 압수수색을 하는 등 압박을 받아왔고 금융당국으로부터 지배구조 개선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문제는 KB금융뿐만 아니라 나머지 금융지주들도 불필요한 자리를 만들고 코드인사를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 이면에는 결국 낙하산 인사를 위한 자리 압박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 지배구조와 CEO 승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서 정치권 및 노조와 친밀한 ‘올드맨’이 컴백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사례가 계속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KB금융은 신설을 검토하는 부회장직이 실권은 없고 고문역할에 머물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정치권을 등에 업은 실세가 부회장으로 올 경우 자칫 현직 CEO와 충돌로 이어질 수 있고 자율경영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KB금융은 이날 상시지배구조위원회를 열고 11개 계열사 대표이사 후보를 선정했다. 선정된 후보는 21일과 22일 양일간 해당 계열사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최종 심사·추천을 거쳐 주주총회에서 확정된다. 윤 회장이 2기 경영을 시작한 후 첫 사장단 인사에서 절반이 넘는 6곳이 연임할 정도로 큰 변화를 주지 않은 게 눈에 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계열사 사장들이 윤 회장과 손발을 맞춰 KB를 리딩금융그룹으로 이끌어왔고 최근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압박과 경찰의 압수수색 등 어수선한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B국민카드 대표에는 이동철 KB금융지주 부사장이, KB생명보험 대표에는 허정수 KB국민은행 부행장이 내정됐다. KB저축은행 대표에는 신홍섭 KB국민은행 전무가, KB데이타시스템 대표에는 김기헌 KB금융지주 부사장이 후보로 선정됐다. 신임 대표이사의 임기는 2년이며 다만 KB금융지주 부사장을 겸직하고 있는 KB데이타시스템 대표이사의 임기는 1년이다.
KB자산운용은 대체자산 투자증가 등 고객 니즈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조직을 ‘전통자산’과 ‘대체자산’ 부문으로 분리하고 ‘대체자산’ 부문에 전문경영인인 이현승 현대자산운용 대표를 후보로 선정했다. 전통자산 부문은 조재민 현 대표가 맡는 복수(각자)대표체제로 전환될 예정이다. 이현승 대표의 임기는 복수대표체제를 감안해 1년으로 정해졌다.
이와 함께 KB증권은 윤경은·전병조, KB손해보험은 양종희, KB캐피탈은 박지우, KB부동산신탁은 정순일, KB신용정보는 김해경 등 현 대표이사가 연임됐다. 재선정된 대표들의 임기는 1년이다.
상시위는 “디지털 혁신 등 금융 트렌드 변화, 저성장 구조가 여전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KB의 상승세 지속을 위해 업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및 실행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대표이사 후보를 선정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