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 통일 후유증으로 경제 전반이 급락하며 신음하던 독일을 ‘유럽의 리더’로 변모시킨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과감한 개혁으로 독일 경제를 부활시켰지만 지지층인 좌파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등 스스로 정치생명을 줄이는 결과를 봐야 했다. 하지만 오늘날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그의 정책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 노동정책 대수술을 이끌면서 슈뢰더 전 총리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지는 분위기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지난 2003년 경제성장률이 -0.4%라는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이하자 하르츠 개혁을 통해 임금 삭감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했다. 좌파의 지지를 받는 사민당 출신으로 ‘정치적 자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과거 50년간 손보지 않은 고용복지에 메스를 가했다. 그는 32개월이던 실업수당 지급 기간을 최소 12개월까지 단축해 실업자들이 적극적으로 구직에 나서도록 유도했다. 또 ‘해고제한법’ 적용 대상을 기존 5인 이상에서 10인 이상 사업장으로 완화하고 비정규직 계약기간과 신규 근로자의 수습기간을 늘려 기업 고용에 숨통이 트이게 했다.
그 결과 슈뢰더 전 총리는 개혁 실시 이후 2년 만에 낙마하고 사민당도 분당 사태를 맞았지만 독일 경제는 부활에 성공했다.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유럽을 호령하는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할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제조업 부활과 높은 경제성장률 창출을 이끌며 4연임 등 장기집권에 성공한 배경도 그가 실시한 개인연금 및 노동개혁에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메르켈 총리는 2005년 총리 취임 이후 첫 의회 연설에서 “하르츠 개혁으로 새 시대의 문을 열게 해준 전임 슈뢰더 총리에게 감사드린다”고 경의를 표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야기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 실체적 주인공이라는 게 그를 기억하는 독일 정가의 일관된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