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한 관련 법 집행의 가이드라인이 나왔다”며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매각하라”고 삼성SDI에 요구했다. 공정위는 그러면서 “이번 가이드라인 덕에 법 집행의 통일성과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자평했다.
그로부터 2년여 뒤인 21일. 김상조 위원장 체제의 공정위는 새 가이드라인을 들고 나오며 이전 가이드라인을 폄하했다. 이유는 이전 정부의 법률 해석이 잘못돼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 정권이 갈리며 가이드라인도 교체되는 사태를 본 기업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법률 검토를 거친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정권이 바뀐다고 손바닥 뒤집듯 달라질 수 있느냐”며 “정부가 이런 식이면 기업들이 정부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쓴소리했다. 다른 기업의 한 고위 인사도 “경제에서 가장 큰 리스크가 불확실성”이라며 “정부가 이를 조장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삼성SDI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예규가 확정되면 법률 검토를 거쳐 대응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삼성SDI는 물론이고 삼성전자(005930) 등 삼성 전체가 언급 자체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이 사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청탁 여부가 쟁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과 얽혀 있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공정위의 번복은 이달 말로 예정돼 있는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항소심 구형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나왔다. 삼성으로서는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재계의 한 인사는 “삼성이 공정위의 의도를 순수하게 보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계가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순환출자 이슈의 파급력 때문이다. 앞으로 경기침체에 따른 사업재편, 후계작업 승계, 지주사 체제 전환 등과 맞물려 이 문제가 수시로 불거질 수 있다. 실제 지난달 김 위원장은 5대 그룹과의 회동에서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재계의 한 임원은 “공정위가 지주사 수익구조, 재단 운영 방식 등에 대해서도 압박하는 마당에 기업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