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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트뮤즈 베스트셀러 '정글로즈' 스트랩의 콜라보레이션 디자이너 이경화 대표



디지털이 상용화되지 않은 시절부터 천 위에 붓으로 한 땀 한 땀 다채로운 무늬를 그려내던 감각. 30년간 더욱 정교해진 예술적 붓터치는 오늘날 컴퓨터 태블릿과 포토샵 캔버스 위에서도 온전히 빛난다. 여성에게 많은 것을 강요한 시대를 거쳐, 동양인으로서 많은 제약과 디자인 기술의 격차를 넘어 매일매일 자신만의 찬란한 디자인을 그려내고 있는 텍스타일 디자이너, 이경화를 만났다.

- 콜라보레이션 창작자로서 보는 <정글로즈> 스트랩의 특징은 무엇인가?


굉장히 클래식한 모티브를 고전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 장미와 표범, 짙은 녹색의 보태니컬 모티브는 어떻게 보면 전혀 새로울 게 없는데, 그래서 더욱 빈티지한 매력이 있다. 특히 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동양적인 모티브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오리엔탈한 분위기가 난다는 것이다. 명암이 정교하고 윤곽선이 뚜렷한데 컬러감이 찬란한 그림체 때문이다.

- 2010년에는 ‘계속 손그림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컴퓨터로 작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9.11테러 탓이다. 그때 전세계적으로 패션 시장이 가라앉았다. 한창 카무플라주(camouflage: 군에서 쓰는 위장도색)패턴이 유행의 정점을 찍던 시기였는데, '군대 냄새 나는' 모든 디자인이 자취를 감출 정도였다. 나까지 그 영향을 받아서 해외 일거리가 뚝 끊기고, 그때 스튜디오 규모를 확 줄였다. 직원들도 많이 내보냈다. 일손이 모자라서 고생하던 어느 날, 딸이 "엄마는 컴퓨터만 하면 날개를 달 텐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날로 오기가 생겨서 시작했다. 막연하게 1주일이면 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웃음)

- 포토샵을 배우다니, 쉽지 않았을 텐데.

죽고 싶었다. 나이 들어 시작하니 그만큼 힘들었다. 젊은 친구들이 1년 걸린다면 난 5년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태블릿도 마찬가지다. 둘째 딸이 '나도 적응 힘들었는데 엄마가 어떻게 해~'라고 지나가면서 던진 말에 발끈해서 연습했다. 태블릿과 닿는 손 피부에 물집과 굳은살이 잡힐 정도로.

- 작업 방식이 바뀌고 나서 어떤 차이가 생겼나?


작업 속도가 4-5배 넘게 빨라졌다. 예전에는 틀에 천을 끼우고 스케치를 한 후 안료를 일일이 배합해 얹어야 했다. 마르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잘못 그렸을 때 수정도 어렵다. 지금은 세밀하고 정교한 모티브는 손으로 그려서 컴퓨터로 옮긴 후 컬러와 배치를 조정한다. 웃긴 건, 대부분은 아직도 내가 포토샵으로 작업한다는 걸 말해주기 전까지는 모른다. (웃음) 아무리 컴퓨터로 작업해도, 내 디자인에는 '손그림’의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다. 지금도 에이전시 통해서 브랜드들이 “혹시 파일이 있나요?”하고 물어볼 정도니까. “당연히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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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간 해외에도 수많은 디자인이 팔렸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때 뉴욕 맨해튼에 내가 디자인한 패턴들이 한꺼번에 깔리곤 했었다. 크리스찬 디올이나 빅토리아 시크릿 같은 브랜드에서도 많이 사용했다. 해외에서 온 손님이 알아보고 기념으로 사다 주기도 하고.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파리의 INDIGO 텍스타일 디자인 박람회(Premiere vision)도 참가했는데, 동양인으로선 유일하게 16회가 넘은 거라고 하더라.

- 뮤트뮤즈 스트랩에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갈 수 있다"란 문구가 있다. 사실 미국 FIT에서 공부한 당신도 '어디든 간 여자'가 아니겠나?

그때만 해도 주재원 남편을 따라온 아내가 공부를 한단 건 말이 안됐다. 더군다나 어린 아이까지 있는 여자가. 그땐 시선이 참 차가웠다. 같은 한국인인 주재원 와이프들도 그렇고, 동양인을 얕보는 미국 사람들도 그렇고, 시기와 질투와 무시가 한꺼번에 쏟아졌던 것 같다. 집에다는 기간 내에 졸업을 못하면 포기하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 대단하다.

수동적이고 남들에게 마냥 착하고 얌전하게 보이길 강요 받는 여성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꿈과 주장을 펼칠 줄 아는 여성이 더욱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땐 그런 거 몰랐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공부했다. '놀 거 다 놀고, 먹을 거 다 먹고 하는 공부는 아무나 하겠다'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집안일도 두말없이 해냈다.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얻어낸 공부의 기회를 잡아야 했으니까.

- 30년이 넘게 텍스타일 디자인에 전념해온 '장인'이자 여성 디자이너로서 요즘은 어떤 기분으로 작업을 계속하고 있나.

어떤 사람들은 나쯤 되면 '무형문화재'가 아니냐고 농담한다. (웃음) 너무 힘들지 않았냐고, 지루하지 않았냐고도 묻는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이 일이 늘 새롭다. 매일 아침 출근이 기다려진다. 트렌드는 늘 바뀌고, 그래서 나는 항상 변화하는 패션의 파도에 작은 점처럼 떠있는 기분이다. 80살 할머니도 새 인생을 시작하는 세상에, 나는 아직 할 게 많지 않을까. 여전히 지금부터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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