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적당한 거리의 죽음] 죽음을 사유한 파리, 깨달음 추방한 서울

■기세호 지음, 스리체어스 펴냄

파리, 죽은자 삶터 가까이에 두고

쉬운 추모로 관계 소중함 되새겨

서울, 개발에 밀려 묘지 외곽으로

자기반성할 도시 속 공간 사라져





상상조차 어려운 죽음의 냄새와 질감이 시도 때도 없이 파고드는 한 주였다. 이름조차 갖지 못한 신생아들이 삶의 첫발을 떼기도 전에 종지부를 찍었고 만인의 사랑을 받던 아이돌 가수가 우울의 덫에서 삶을 마감했다. 교통사고부터 낡은 건물을 뒤덮은 화마까지 허망한 죽음이 이어질 때마다 눈을 질끈 감는다. 내게는 죽음의 비극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탓이다.


이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려 하지만 우리의 언어 습관 속에는 알게 모르게 ‘죽음’이 떠다닌다. 나무가 시들 때 나무가 죽는다고 하고 볼륨을 줄이라고 할 때 소리를 죽이라고 하며 사람의 기가 꺾일 때도 기가 죽는다고 한다. 막장 드라마에선 불필요해진 인물이 밑도 끝도 없는 불치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쉽게 제거되고 게임 속 캐릭터는 생명이 소진된 즉시 리셋되며 새 생명을 맞는다. 숱하게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나의, 우리의, 사회의 죽음을 깊이 성찰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다.



누구나 삶의 끝을 맞이하는데도 삶과 함께 죽음을 성찰하지 않는 역설을 도시인문학 차원에서 접근한 ‘적당한 거리의 죽음’은 죽은 자에겐 한 평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서울과 삶의 공간 안에 죽음의 풍경을 드리워놓는 프랑스 파리를 비교한다. 그리고 반성과 성찰을 위한 장소로서 도시 속 죽음을 관장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물론 이 책의 사유를 따라 가려면 첫 번째 질문이 해결돼야 한다. 우리는 왜 죽음을 사유해야 할까. 스크루지 영감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 찾아온 유령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선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그제야 자신의 욕망에 귀 기울이고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서부터 생면부지인 타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계의 죽음을 겪으며, 우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독일 시인 릴케의 말 처럼 죽음을 “우리에게 등을 돌린 또 다른 삶”이라고 인정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시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관련기사



근대 이전까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묘지를 삶터의 근처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천정부지로 오르는 도시 땅값에 근대적 위생 관념까지 더해져 근대화를 겪은 어느 도시든 공동묘지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특히 철도 교통이 발달하며 묘지는 더 이상 걸어서 갈 수 없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건너가야 하는, 경계 너머의 세상이 됐다. 일상의 공간에서, 특별한 날 사자를 기억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목적지향적 공간이 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모든 도시에서 묘지가 추방된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공원식 묘지였던 페르 라셰즈, 몽 파르나스, 몽 마르트에는 지금도 무덤과 꽃, 운동하는 사람과 잔디 위를 뛰노는 어린이들이 얽혀 있다. 1853년 프랑스 파리를 근대적으로 바꾸는 ‘오스만 계획’에 따라 파리 시 당국 역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대규모 묘지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파리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계획은 폐기되고 만다. 이때부터 죽은 자를 삶의 터전 가까이에 두고 언제든지 쉽게 방문하고 추모하는 것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시민의 권리로 인식됐다.

반면 1960~1970년대 서울에서는 국가 전체가 산업화를 향해 내달리는 가운데 묘지는 단지 개발의 장애물로 인식됐고 인가 없는 외진 곳, 도시 외곽에 설치하도록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묘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뿌리를 내렸다. 화장장이나 납골당은 집값을 떨어뜨리는 애물단지가 됐고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의 묘지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프랑스와 달리 우리는 스스로 죽음을 곁에 두고 사유할 권리를 폐기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죽음을 좀 더 가까이 사유하자는 저자의 제안은 도시와 묘지의 물리적 결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실의 봉안당과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결합한 새로운 추모 방식, 지하철역이나 관공서에 봉안당을 설치하거나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축제 등의 형식으로 도시의 삶과 죽음의 사유를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제안이다.

120쪽에 불과한 분량 속에 저자는 죽음을 사유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공한다. 가장 큰 깨달음은 산 자의 권리와 죽은 자의 권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 스스로 보장받아야 할 두 가지 권리를 불일치시키고 폐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1만2,000원

서은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