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일자리 샌드위치' 된 중산층 청년들

저소득층은 국가가 챙기고 부유층은 집안서 지원…중산층만 취업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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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이모(35)씨는 올해 9급 세무직에 당당히 합격했다. 졸업 이후 꿈에 바라던 공무원이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지원으로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갖지 않고도 시험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 그의 친구들은 공기업이나 대기업을 고집하는 게 아닌데도 여전히 실업 상태에 놓여 있다. 이씨는 “실업자로 지낸 10년의 세월 동안 가족에게 면목이 없었다”며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지방의 한 전문대에서 물리치료를 전공한 박모(23)씨도 올해 9급 공무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씨와 다른 점은 보건직 저소득층 전형에 응시했다는 것이다. 졸업 후 준비기간도 거의 없었다. 기초생활수급 가구 구성원인 박씨는 국가장학금 제도를 통해 사실상 대학 등록금을 면제받았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취업 준비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박씨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일자리를 갖는 데 불리하지만 잘 찾아보면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많다”고 말했다.


중상소득 청년 고용률 가장 낮아

저소득가구와 격차 20%P 달해

정부 프로그램 등 혜택 못받고

스펙 쌓을 수 있는 자금은 부족

“국가 지원 대상 확대” 잇단 지적




중산층 가구 청년들이 취업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저소득층 가구 청년은 국가의 제도적 지원을, 고소득층 가구 청년은 집안의 경제적 지원을 발판 삼아 상대적으로 고용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중산층 가구 청년은 ‘나 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 가구 청년에 집중된 지원 대상을 중산층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구 청년 간 발생할 수 있는 역차별을 해소할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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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한국노동연구원이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보고서를 토대로 가구소득 분포별 청년(19~29세) 고용률을 도출한 결과에 따르면 ‘중산층’인 중상소득(101~150%) 가구의 고교·대학 등 졸업생 고용률은 58.5%로 총 5개 소득 구간 가운데 가장 낮았다.

청년 고용률은 저소득(1~60%) 가구가 79.2%로 가장 높았고 이어 최상위소득(201% 이상) 가구 75.6%, 상위소득(151~200%) 가구 69.5%, 중저소득(61~100%) 가구 60.9% 등의 순이었다. 중상소득과 저소득 가구의 청년 고용률 격차는 무려 20.7%포인트에 달했다. 이번 분석에서 100%는 가구 전체 소득에서 청년 본인의 것을 뺀 소득을 금액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있는 소득이다.

이처럼 중산층 가구 청년의 고용률이 상대적으로 더 낮은 배경에는 사회·경제·제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생계를 위해 이른 시일 내 일자리를 구해야만 하는 저소득층 가구 청년은 중산층 가구 청년보다 일자리의 질을 덜 따지다 보니 고용률이 높게 나온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아울러 저소득층 가구 청년은 중산층 가구 청년보다 국가장학금 제도, 정부의 취업 지원 프로그램 등을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저소득층 청년은 연간 520만원 한도로 장학금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정부의 취업 지원 프로그램 중 상대적으로 높은 수당과 훈련비를 제공하는 취업성공패키지(1유형)에 지원 가능하다. 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일부 민간기업에 지원할 때 일반적으로 합격선이 낮은 저소득층 전형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중산층 가구 청년보다 고소득층 가구 청년에게 국가 차원의 혜택이 더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소득층 가구 청년은 집안의 도움으로 더 나은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취업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굳이 스스로 벌 필요가 없다 보니 일자리를 얻는 데 요구되는 다양한 스펙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가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집안의 후광, 유무형의 취업 특혜 등도 이들의 고용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 가구 청년에 대한 지원이 중산층 가구 청년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정성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을 기준으로 청년 취업 지원정책을 펴다 보면 자칫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일자리 문제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맞느냐는 철학적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취업 지원책의 자격 요건은 소득의 구분을 두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도 대체로 소득에 따른 차별적 요소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부터 현재 기초~소득 3분위인 소득연계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이 중산층인 기초~소득 4분위까지 확대된다”며 “중산층 가구 학생·청년들이 역차별을 받는 일은 없도록 해나간다는 게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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