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 상승으로 주가연계증권(ELS)의 조기상환액이 72조원을 넘어섰지만 예상과 달리 재투자 규모는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모두 상승세를 탄 가운데 4~5% 수준의 수익률이 만족스럽지 않은데다 지난 2015년 홍콩H지수(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폭락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ELS는 일반적으로 재투자를 통한 선순환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을 사용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단기 투자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2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ELS 발행규모는 61조654억원(1만5,111건)에 달한다. 홍콩H지수 급락 직전 연도인 2014년도 발행규모 51조5,963억원(1만6,687건)을 넘어섰다. 발행규모만으로 보면 전성기를 다시 찾은 모습이지만 상환규모를 보면 사정은 다르다. 올해 ELS는 조기상환 규모는 72조7,317억원(1만9,873건), 만기상환 2조1,427억원(1,303건)으로 중도상환(5,556억원)까지 포함하면 75조4,300억원이 상환됐다. 상환된 금액이 발행규모보다 14조3,646억원이나 많은 형편이다. 다시 말해 상환된 자금 14조원가량은 다른 투자처를 찾아 떠났다는 이야기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해 월평균 발행은 5조3,000억원인 반면 상환은 6조3,000억원에 달해 매월 1조원 이상 상환이 더 많았다”며 “더구나 상환된 자금이 원금보장을 추구하는 주가연계채권(ELB)으로도 유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외 주식시장의 강세와 시장 이자율의 반등이라는 주변 투자환경이 ELS의 낮은 쿠폰에 대한 투자 매력을 떨어뜨렸다는 분석이다. 이미 보유하던 ELS는 꾸준히 조기상환이 되는데 재투자하려니 지수는 더욱 높아졌고 ELS 쿠폰 수익률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인 셈이다.
더구나 ELS의 기초자산으로 사용되는 홍콩H지수 충격의 여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점도 ELS 재투자를 가로막고 있다. ELS는 가입 후 2년이 지나면 기초자산으로 쓰이는 지수가 계약 시점의 85% 안팎만 돼도 원리금을 되찾을 수 있는 구조다. 즉 2015년 이전 H지수가 1만4,000선에서 발행된 ELS의 상환 기준은 1만1,900(85%)수준이다. 지난 22일 홍콩H지수는 전날보다 0.48% 상승한 1만1,653.08에 거래를 마쳐 원금 손실 ELS는 대폭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떨치기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인터넷 투자카페에서는 “3년 동안 반 토막 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증권사 직원 말이 현실이 된 H지수에 재투자하기가 꺼려진다”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온다.
투자자들이 재투자를 꺼리는 가운데 금융당국과 증권사들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H지수 폭락 당시 금융당국이 도입한 H지수 ELS의 발행총량규제가 여전히 적용되고 있고 증권사 역시 H지수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증권사 파생상품부서 관계자는 “막 손실에서 헤어나온 투자자가 다시 H지수가 편입된 ELS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라며 “당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증권사도 H지수보다 다른 기초자산을 발굴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저효과로 재투자 감소가 일시적 현상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중호 KB증권 리서치센터 델타원파생팀장은 “과거와 달리 상환된 금액을 재투자하는 경향이 축소된 것은 사실”이라며 “워낙 큰 폭의 손실이 발생한 후에 기저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주식시장이 호조세를 보이며 자취를 감췄던 종목형 ELS도 재등장하고 글로벌 지수가 늘어나는 등 ELS 기대수익률도 점차 상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