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100세 인생, 인생 사용법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기대수명 늘지만 은퇴 빨라지고

부모부양, 가족책임 인식 감소

익숙한 방식 고의적으로 잊고

노후설계 더 정교하게 세워야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00세 인생이 가능한 현실이 돼가고 있다. 막상 100세 인생이 현실로 다가오자 100세 살아보기를 갈망했던 그 옛날의 기대처럼 100세 인생이 마냥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1960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53세였다. 기대수명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2015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6세에 달한다. 기대수명과 은퇴연령을 대조해보자. 직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월급생활자라면 50대 후반부터 은퇴하기 시작해 60대 중반을 지나면 현역에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 100세까지 내심 기대해볼 수 있게 됐지만 직업에 종사하는 기간은 거꾸로 줄어들고 있다. 당분간 이 추세가 중단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100세 인생 시대의 불편한 진실이다. 100세 인생 시대에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짧아진 직업활동 기간에 축적한 돈으로 점점 더 길어지는 비직업활동 기간을 버텨야 하는 것이다.

아주 오랜 기간 가족은 개인이 노출돼 있는 불확실성 속에서 유일한 확실성을 보장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100세 인생이 성큼 다가오는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가족도 변화했다. 은퇴 이후 노후의 안전판을 제공하던 ‘우리가 알고 있던 가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1998년만 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은 부모 부양이 가족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89.9%의 한국인은 부모 부양이 가족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태도가 유지되고 있을까.


2014년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 나이 든 부모의 부양이 가족 책임이라는 태도를 선택한 사람은 31.7%에 불과하다. 부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는 그 사이 부쩍 늘었다. 1998년 불과 8.1%만이 부모 스스로 노후를 해결해야 한다고 대답했는데 2014년에는 16.6%가 노후 해결은 자식이 아니라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조사는 전통적 ‘가족주의’적인 해결방식에 의한 노후 안전성 확보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돼버린 삶의 전략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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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자금 설계는 그래서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노후자금 설계 없이 노인인구로 편입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비극을 경고하는 지표가 있다. 노인빈곤 현상이다. 2012~2013년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중 중위소득 50% 이하 비율을 의미하는 노인빈곤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2.4%인데 한국은 무려 49.6%다.

‘가족주의’적 해결방식이 쇠퇴했다고 한탄만 할 수는 없다. 한탄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100세 인생이 현실화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한탄의 시간은 최소화하는 게 좋다. 늘어난 평균수명만큼 늘어나야 할 것은 한탄의 시간이 아니라 궁리의 시간이다.

100세 인생이 현실화된다면 우리는 과거 노인들이 은퇴 이후에 선택했던 삶의 설계를 그대로 물려받을 수 없다. 예전의 노인들은 과거에 습득한 지식과 경험에 의존해 관성에 따라 살아도 큰일이 생기지 않았지만 앞으로 노인이 될 사람들은 관성에 의존한다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은퇴란 익숙해진 삶의 모든 조건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직업세계에서는 학습(learn)이 중요하다. 직업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한 학습의 속도와 깊이가 정말 중요하다. 은퇴 이후에는 익숙한 것, 배웠던 것, 상식으로 생각했던 것을 고의적으로 잊는 것(unlearn)이 더 중요하다. 다가오는 현실화된 100세 인생의 시대 우리는 전통적 가족주의적 노후 해결에 대한 기대를 ‘고의적으로 잊어야’ 한다. 미래에 노인인구로 편입될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노후설계의 출발점은 ‘고의적으로 잊는’ 훈련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당연히 국가와 사회도 이 책임을 개인·가족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국가·사회도 이 익숙한 떠넘김을 ‘고의적으로 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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