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미술품 '거래이력표' 의무화...위작 싹을 자른다

'미술품 유통법' 정부안 국무회의 의결

그림 위조하면 5년 이하 징역...연내 국회 제출

2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미술품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제정안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이영열 문체부 정책관(왼쪽)과 신은향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장. /조상인기자2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미술품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제정안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이영열 문체부 정책관(왼쪽)과 신은향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장. /조상인기자


앞으로는 화랑이 어떤 미술작품을 얼마에 거래했는지 등을 기록한 ‘거래이력’을 관리하는 의무가 생겨난다. 미술품에 주민등록표가 생기는 셈인데,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유통된 경로를 파악해 위작이 끼어들어 거래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 조치다.

또한 경매업체는 그동안 미술품의 낙찰가만 공개하던 것에 추가적으로 실제 돈을 냈는지 완납 여부를 공지해야 한다. 미술품 허위낙찰을 막기 위해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미술품의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정부 안으로 확정됐고 연내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천경자 화백의 그림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인도’는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검의 수사결과 진품이라는 발표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진위공방이 뜨겁다. /연합뉴스천경자 화백의 그림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인도’는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검의 수사결과 진품이라는 발표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진위공방이 뜨겁다. /연합뉴스


국내외적 명성에 비례한 위작논란에 휘말려 고초를 겪은 이우환 화백. /서울경제DB국내외적 명성에 비례한 위작논란에 휘말려 고초를 겪은 이우환 화백. /서울경제DB


이번에 의결된 ‘미술품 유통·감정 법률안’은 지난해 이우환·천경자 파문 등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자 위작 유통 근절과 시장 투명성 강화를 목적으로 마련됐다. 이에 미술품 진위감정의 주요한 근거인 소장이력(provenance)에 해당하는 미술품 거래내역이 마련돼 눈길을 뜬다. 이번 법안에 의해 미술품 유통업은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전속작가를 지원해 전시를 여는 등 경제활동에 공공성을 겸한 ‘화랑업’과 미술품 2차 거래인 ‘경매업’, 그 외 전시장이나 전속작가없이 미술품만 거래하는 ‘판매전문 업체’(신고제)로 구분된다. 업종 자체가 없었던 ‘화랑업’이 등록제로 생겨난다. 허가제가 도입되는 ‘경매업’에는 불공정 행위 규제에 대한 의무가 생겼다. 경매업체는 자신이 유통시킨 미술품에 대한 내역을 관리해야 하고 자사 경매에 참여할 수 없으며 특수 이해관계자가 소유·관리하는 미술품을 경매할 때 사전 공지해야 한다. 경매에 특수관계의 화랑이 보유한 전속작가 작품을 출품한 후 고가에 낙찰받는 등 미술시장 일각에서 문제 발생을 우려하며 지적해 온 허위낙찰이 차단될 전망이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만 특별한 자격제도 없이 운영되던 미술품 감정업에는 등록제가 도입된다. 위작 미술품을 제작·유통한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계약서나 보증서를 거짓으로 작성해 발급한 자 또는 허위감정서를 발급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벌금에 처해진다. 그간 미술품 위작에 사기죄나 사서명 위조죄 등이 적용돼 징역 10년 이하 3,000만원 이하 벌금이던 양형이 강화된 것은 아니나 ‘위작죄’를 사회적 신뢰와 공공질서에 위해를 가한 행위로 규정한 것에 대해 문체부는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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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미술품감정연구원 설립을 추진하던 원래 문체부 안은 기재부와의 협의 결과 공공기관 신설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삭제되고 대신 정부 산하 국가기관이나 단체가 ‘미술품감정연구센터’로 지정된다. 국과수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예술은행 등 다양한 기관이 후보로 거론될 수 있다. 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민간 감정과는 별개로 수사·재판·과세 등을 위한 검·경찰과 국세청의 요청에 의한 미술품 감정을 전담하며 미술품 감정기법 연구와 미술 감정 전문가 교육 등 R&D 사업에 치중하게 된다.

이번에 의결된 법안에는 지난해 10월 정부안의 핵심 쟁점이던 화랑과 경매사의 겸업 금지, 거래이력 신고제 등이 모두 빠져있다. 규제법안으로 인한 시장 위축을 우려한 업계 반발을 적극 수용한 모양새다. 그러나 유통업체들은 “자산가치 있는 고가품 중에서도 시계·보석 등과 달리 미술품에 대해서만 가혹한 입장을 취한 것”이라며 “거래 내역은 사는 사람에 관한 것인데 왜 판매자에게 굴레를 씌우느냐”는 등 여전히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신은향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장은 “장기적으로 미술품 구매에 대한 세제혜택을 시행해 미술시장을 활성화 하기 위해서라도 법제화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신 과장은 “산하기관을 통해 집계한 국내 미술품 시장규모는 4,000억원대, 화랑수는 430여개라고 하지만 다른 조사에서는 화랑수 800여개, 미술시장 규모는 1조5,000억원이라 할 정도로 정확하지 않기에 미술시장 양성화·투명화를 통해 제대로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며 “구조적인 규제보다는 불공정한 거래부터 먼저 규제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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