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금융감독원이 대신 신용평가사(신평사)를 선정해주는 회사채 발행 기업에 한해 복수평가제 의무가 면제된다. 회사채 발행 수수료에 수익 의존도가 높은 신평사의 독립성을 높이고, 입맛대로 신평사를 고르는 기업의 ‘등급 쇼핑’을 막겠다는 취지다.
다만 제4 신평사 진입 여부는 시장 평가위원회의 결론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신규 신용평가사의 진입을 위한 시장 평가위원회는 지난 5월 첫 회의를 연 뒤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안이 금융위 의결을 거치면서 이 같은 내용의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이 내년 본격 시행된다고 27일 밝혔다. 해당 방안은 동양, STX그룹 사태에 이어 대우조선해양 등 대규모 기업 부실 사태가 났지만 경고를 울려야 할 신용평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따라 마련된 것으로, 금융위는 자체 신용제, 신용평가사 선정 신청제, 신평사 제재 강화 등 내용을 담아 지난해 9월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한 것은 지난번 방안에 일부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우선 금투업 규정 개정 사안인 신평자 선정신청제에 복수평가제 감면을 연동(내년 1월1일 시행)했다. 선정신청제란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이 신청하면 신용평가를 수행할 신평사를 금감원이 대신 선정해주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발행기업이 신용평가를 수행할 신평사를 선정하는 구조 하에서 ‘등급 쇼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이 있는데 선정신청제는 이에 대한 개선책”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은 복수평가 의무가 면제돼 수수료 부담을 덜 수 있다.
신평사 수익 대부분이 기업의 회사채 발행 수수료에 의존하는 상황이라 기업이 비판적인 평가사의 신용평가는 무시해버리는 현실을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평사 시장의 ‘일감 나눠먹기’를 공고히 한다는 비판이 있었던 복수평가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한 것이 주목된다. 복수평가제는 기업들이 회사채나 CP를 발행할 때 2곳 이상 신용평가사에서 신용등급을 받도록 한 제도다. 1995년 국내 신용평가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하에 복수평가제가 도입된 후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3사가 안정적 독과점 체제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금융위가 선정신청제를 발표했지만 ‘기업이 구태여 낮은 등급을 주는 신평사를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문화’ 전망까지 나왔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복수평가제를 도입한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경쟁을 촉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2018년 1월 1일부터 회사채 발행기업이 아닌 투자자 등 제3자의 요청에 따른 신용평가가 허용된다. 지금은 기업이 신평사에 수수료를 주고 평가를 의뢰하는 구조여서 신용등급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은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기업에서 자료제공 없이 공시 정보 등을 바탕으로 평가된 정보인 경우 별도의 신용등급 체계를 사용해 등급을 표기하게 된다.
아울러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는 불건전 영업행위에 대한 규제는 최대 ‘영업정지’에서 ‘인가취소’로 강화된다. ▲ 신평사간 등급 담합 ▲ 신용평가 관련 재산상 이익 제공 ▲ 특수관계자에 대한 신용평가 제한 우회적 회피 ▲ 평가계약 체결 전 기업에 예상신용등급 관련 정보 제공 ▲ 평가계약 체결을 위한 신용등급 이용 행위 등이 대상이다.
신용평가 업무가 제한되는 이해관계 임직원 범위가 평가 대상 기업 주식을 소유한 경우에서 임직원 또는 배우자가 해당 기업의 금융투자상품을 소유한 경우와 해당 기업에 근무하거나 이직한 지 1년 미만인 경우로 확대된다. 신평사의 대주주 요건도 강화해 ‘신평사의 공익성과 경영 건전성 및 건전한 시장질서를 해칠 우려가 없을 것’이란 문구를 추가했다.
이와 더불어 내년부터는 신평사 자체적으로 내부통제 정책, 운영 현황 등을 기술한 보고서를 작성해 사업연도 말 3개월 이내에 금감원, 거래소, 협회에 제출하고 3년 동안 회사 홈페이지 등에 공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