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대구엔 올 겨울에도 '키다리 아저씨' 오셨다

6년만에 모습 드러낸 60대 부부

"내 돈 아니다" 생각하며 저축한

1억2,000만원짜리 수표 기탁

개인 최고 총 8억4,000만원 나눔



익명의 기부천사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지난 23일 대구공동모금회에 전달한 수표.

/사진제공=대구공동모금회


“주말에 시간 되는교? 잠깐 내 얘기 좀 들어줄랍니까?”

지난 18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의 주인공은 익명의 기부천사 ‘키다리 아저씨’. 대구공동모금회는 올해도 성탄절을 즈음해 찾아오지 않을까 하며 키다리 아저씨를 기다렸는데 이날 전화가 온 것이다.

성탄절을 이틀 앞둔 23일 대구 수성구의 한 식당에서 박용훈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 등 모금회 직원 3명이 키다리 아저씨 부부를 만났다.


모금회에 따르면 매년 1억원 이상을 기부하는 부부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검소하고 평범한 차림의 60대 부부였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키다리 아저씨는 봉투 한 장을 모금회에 건넸다. 봉투에는 1억2,000만여원의 수표가 들어 있었다. 매월 1,000만원씩 적금한 돈에 이자가 붙은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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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회 직원들은 키다리 아저씨가 기부를 시작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그와 긴 이야기를 나눴다. 소주잔도 기울였다.

근검절약 생활습관에도 불구하고 가끔 쓰고 싶을 때가 있었고 그럴 때는 ‘내 돈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한 때를 생각하며 성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부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혼자 나눔으로는 부족하다며 우리 사회의 더 많은 시민들이 나눔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모금회 직원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2012년 1월 처음 모금회를 방문해 익명으로 1억원을 전달하며 나눔을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모금회 사무실 근처 국밥집에서 1억2,300만여원을 건넸고 이후 해마다 12월이면 인근에 직원을 불러내 1억원이 넘는 돈을 전달했다.

6년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기탁한 성금은 모두 8억4,000만여원으로 대구공동모금회 역대 누적 개인 기부액 가운데 가장 많다.

박 사무처장은 “올해도 잊지 않고 거액의 성금을 기부한 키다리 아저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성금을 지역의 소외된 이웃에게 잘 전달해 ‘나눔으로 더 따뜻한 대구’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대구=손성락기자 ssr@sedaily.com

손성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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