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첫 특별사면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서민생계형’이다. 전체 대상자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일반 형사범일 정도로 형사처벌·행정제재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부담을 더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반면 5대 중대범죄 사범이나 시장교란 행위자 등은 철저히 배제했다. 역대 정권 사면에서 매번 등장했던 경제인들도 사면 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청와대가 이번 사면을 꿰뚫는 대표적 단어로 이른바 ‘장발장 사면’을 꼽은 이유도 사면 대상자 구성과 연관이 깊다. 다만 재계에서는 사면 대상에 재계 인사 등 기업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을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했다. 사면이 서민 부담을 덜어주는 데 초점이 맞춰지면서 가장 중요한 ‘국가 경제 살리기’에는 소홀한 게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29일 법무부에 따르면 30일자로 단행되는 특별사면 대상자 가운데 일반 형사범이 차지하는 비중은 99%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생활고 때문에 식품·의류 등 생필품을 훔치다가 붙잡힌 생계형 절도 사범 가운데 전체 피해금액이 100만원 미만인 사건 수형자들이 다수 포함됐다. 실제로 밤에 슈퍼마켓에서 소시지 17개, 과자 1봉지를 훔쳐 징역 8개월이 확정돼 수감 중이던 A(59)씨는 초범이고 훔친 물건이 회수됐다는 점이 고려돼 사면이 결정됐다. 사면 명단에는 시가 5만원 상당의 중고 휴대폰이나 킹크랩 두 마리를 훔쳤다가 수감됐던 이들도 포함됐다. 또 교도소에서 아이를 출산해 아이와 함께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수감자 2명도 사면 대상자 명단에 올렸다.
대신 반부패 사범과 시장교란 행위자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제한한다는 이른바 ‘문(文)의 원칙’을 철저히 적용했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한명숙 전 총리를 사면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단적인 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뇌물·알선수재·수뢰·배임·횡령을 5대 중대 부패범죄로 규정하고 관련 범죄자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특히 사면으로 국론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인물도 사실상 모두 배제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노동계 민중총궐기 시위 주도 혐의로 징역 3년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앞서 노동계 일각에서는 그가 사면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공안·노동 사범은 서민생계형에 속하지 않아 배제된 것으로 풀이된다. 내란 음모 사건으로 복역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대표도 같은 이유에서 제외됐다.
또 그동안 사면 때마다 ‘경제 활성화’ 등의 이유로 자주 등장했던 재계 인사는 단 한 명도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다만 이날 청와대는 정치·경제인에 대한 앞으로의 사면 가능성은 열어놓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서민생계형이 아니면 정치인·경제인 사면이 될 텐데 사회 통합보다는 분열을 촉진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판단했다”며 “공안·노동사범은 서민생계형에 속하는 것이 아니므로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집회시위 사범 가운데서는 2009년 용산 참사 관련자들이 특별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용산구 빌딩 세입자나 철거민 단체 회원인 이들은 2009년 1월19일 빌딩에 설치한 망루에서 보상을 요구하며 농성하다가 불을 내 경찰 1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정부는 ‘삶의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을 배려함으로써 사회적 갈등 치유 및 국가 통합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특별사면 대상으로 선정했다.
정치권에서 사면·복권된 인사는 정봉주 전 의원이 유일했다. 정 전 의원은 2007년 17대 대선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했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고 2022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17대 대선 사범이 이미 사면된 적이 있는데 정 전 의원은 배제됐었다”며 “형평성 차원에서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또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소속 의원 125명이 사면을 탄원한 것도 작은 요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안현덕·이태규기자 alwa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