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로하니, 뭐하니"…경제 불안에 민심 폭발

이란 8년만에 수만명 반정부 시위

"로하니 정부, 중동문제 개입 멈추고

고물가·고실업 문제부터 해결하라"

강경보수 중심 경제정책 비판하자

젊은층·서민층도 가세…전국 확산

'하메네이 신정체제'도 위기 가능성

'이란 압박' 트럼프는 "시위대 지지"

이란 테헤란대 학생들이 30일(현지시간) 최루가스가 가득한 교내에서 반정부시위를 펼치고 있다.    /테헤란=AFP연합뉴스이란 테헤란대 학생들이 30일(현지시간) 최루가스가 가득한 교내에서 반정부시위를 펼치고 있다. /테헤란=AFP연합뉴스


지난 28일(현지시간) 시작된 이란 반정부시위가 30일까지 이어지며 테헤란·마슈하드·이스파한·케르만샤 등 전국 각지로 확산되고 있다.

집회와 시위를 엄격히 통제하는 이란에서 수만 명 규모의 시위대가 모인 것은 2009년 선거부정 시위 이후 8년 만이다. 이번 시위는 개혁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물론 신정국가인 이란의 일인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까지 겨냥하고 있어 심상치 않은 조짐이 감지된다.


AP통신 등 서방 언론과 현지 IRNA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 시위는 28일 이란 제2도시 마슈하드에서 시작됐다. 마슈하드는 2017년 5월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과 맞붙었던 강경보수 에브라힘 라이시 후보의 고향이자 보수적 색채가 강한 종교도시다. 이에 따라 첫 시위는 로하니 대통령의 경제정책 실패를 구실로 정적인 보수파에서 조직적으로 일으켰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시위는 테헤란 등 다른 도시로 번지며 성격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2017년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을 지지했던 서민층과 젊은 층이 시위에 가세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자지구를 내버려두라. 레바논을 내버려두라. 내 삶은 이란을 위해!”라는 구호를 외치며 이란 군부의 중동 문제 개입을 비판하고 정부의 민생고 해결을 요구하는가 하면 보수파 비난에 힘을 싣는 등 다각도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2015년 핵협상이 타결되고 서방의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반짝 성장하던 이란 경제는 최근 미국·사우디아라비아 등과의 외교적 갈등이 심해지며 다시 악화하고 있다. 핵협상 타결 다음해 12.5%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은 2017년 3.5%(국제통화기금 추정치)까지 떨어졌으며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은 계속 두자릿수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조류인플루엔자 확산까지 겹쳐 달걀·가금류 가격이 40%가량 오르면서 서민층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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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끌어내리는 동영상이 유포되는 등 신정체제에 불만을 품은 급진개혁파들까지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경보수 성향의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이란의 종신직 최고권력자로 로하니 대통령과는 갈등관계에 있다. 30일 이란 최고 명문인 테헤란대에서는 학생 수십 명이 모여 통제 중심의 통치방식을 비판했으며 일부 여성들은 히잡 의무 착용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보수파와 개혁파, 기득권층과 서민층이 저마다 들고일어나는 다층적 시위는 이란이 품은 복잡한 사회·정치 상황이 폭발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에서 최고 종교지도자에 대한 비난까지 쏟아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란은 밀가루·천연가스 등 필수품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형태로 국민적 저항을 무마해왔으나 최근 급격한 물가 상승 속에 사회적 불만이 누적돼왔다. 여기에 또 다른 아랍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경제난에 따른 ‘탈석유’ 혁명으로 사회 개방에 앞장서기 시작해 여성 교육률이 아랍권 최고인 이란에서도 개혁개방 목소리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이로써 2017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로하니 정권은 물론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구심점으로 하는 신정체제까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등 이란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란에 휩싸였다.

이란 정부는 이번 사태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CNN 등은 보안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으며 도루드에서는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 2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또 현지 언론의 시위 보도를 통제하고 있으며 텔레그램 등 SNS 서비스 중단 등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무함마드 자바드 아자리 자흐로미 정보통신부 장관은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에게 트위터를 통해 “텔레그램 채널이 혐오행동과 무장봉기·사회불안을 조장하고 있다”고 경고를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로 “세계가 (이란을) 지켜보고 있다”며 시위대를 향한 지지를 표했다. 그는 “억압적인 정권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며 “이란인들이 선택에 직면할 날이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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