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짜깁기·백화점식 정책에...하반기 경방 발표 없앤다

매년 12월 한차례만 발표 유력

'경기 진단' 식으로 대체 검토도

최근 정부의 ‘2018년도 경제정책방향(경방)’에 담길 내용을 준비했던 한 경제부처 관료 A씨는 적지 않은 회의를 느꼈다. 내년도 경방에 채워넣을 정책들을 급하게 기획재정부에 건네줘야 하다 보니 실행 가능성이나 효과 여부를 떠나 일단 ‘발표할 분량을 채워넣고 보자’는 식의 유혹을 느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지난해 7월 하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이 발표된 지 불과 5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정책 효과를 되짚어볼 시간도 없이 다시 백화점 식으로 짜깁기해 새 경방을 발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기재부 내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부처 내부에서는 연간 두 차례씩 발표돼온 경방을 연말에 한 차례만 발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매년 6월 말에 발표해온 하반기 경방을 폐지하고 12월 말에 발표하는 이듬해용 연간 경방만 내놓는 방안이다. 한 고위 당국자는 “기재부가 하반기 경방을 없애고 대신 ‘하반기 경기현황’이나 ‘하반기 경기 흐름’과 같은 형식으로 경제의 흐름만 진단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반기 경방 폐지 방안이 경제부처 내부적으로 저울질되는 데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는 단기적인 경기 대응으로 더 이상 우리 경제의 성장을 주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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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경제부처들은 거의 매달 가계부채종합대책·부동산대책 등 대증적인 단기경기대책을 쏟아내느라 구조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여유가 부족했다.

두 번째 배경은 계획경제 식 정책운용의 한계다. 경방은 사실 과거 5개년 경제개발계획과 같은 계획경제 시대의 산물이다. 정부가 성장의 밑그림을 그리면 공공과 민간 부문이 그에 맞춰 투자와 고용 등을 실시한다는 권위주의 시대 유산이다. 하지만 급격한 시장 자유화와 세계화·개방화로 정부가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입김이 많이 약해졌다. 그나마 기재부 등 경제부처가 지렛대로 삼아온 게 예산과 세제, 정책금융 정도인데 예산과 세제는 편성만 정부가 할 뿐 사실상 주도권이 국회로 넘어갔다. 우리 경제의 규모 워낙 거대해져 정책금융의 효과도 상대적으로 미미해졌다.

규제개선의 경우도 국회 입법의 벽을 넘기 힘들어진데다 향후 개헌으로 지방자치가 강화되면 중앙정부가 간섭하기 어려운 지자체별 규제가 더 강화될 우려도 있어 그만큼 계획경제 식 정책운용은 더 어려워진다. 다만 청와대와 기재부가 당장 새해에 하반기 경방 폐지를 실제로 결단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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