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북한에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을 제의한 뒤 회담 의제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미국은 비핵화를 떼어놓고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뤄질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이번 회담의 의제를 평창올림픽에 국한해 비핵화 논의를 피하려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의제에 제한을 두지 않고 북한의 반응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인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공개 언급해 주목된다.
강 장관은 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시기나 형식에 열린 자세로 평창올림픽 관련 문제부터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에 대해 일단 마주 보고 북한과 얘기를 시작해야 구체적인 진전이 이뤄질 수 있다”며 “인도주의 문제인 이산가족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도 충분히 이해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의제가 경제협력 재개와 비핵화 문제로 확대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국제사회의 공조를 통해 이뤄나갈 부분”이라며 “북핵·미사일로 인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이 상당히 센 제재를 걸어놓은 틀 안에서 (경협과 관련해) 뭐가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 논의들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제외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3일 조선중앙TV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제안하신 평창올림픽경기대회 우리 측 대표단 파견과 그를 위한 북남 당국 간 회담”이라고 언급하며 이번 회담을 평창올림픽 참석과 관련한 논의에 국한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국무부의 카티나 애덤스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이날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얘기한 것처럼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 핵 프로그램 해결과 별도로 진전될 수 없다”고 밝혔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금지하기 위한 어떤 것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대화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회담의 의제를 놓고 긴 고민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고위 당국회담이 아닌 실무회담을 역제안할 가능성에 대해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회담의 시기·장소·의제·성격은 오픈해놓은 상황”이라며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보면서 관계부처와 협의해 유연하게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