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의제를 우선 평창올림픽 참가로 제한하다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경협, 더 나아가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축소로 넓힐 수 있다. 소프트한 의제로 접근하다가 한국과 미국 간 공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민감한 이슈를 역제안할 수 있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북한이 처음에는 대화에 응하다가 나중에는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한미공조에 균열을 일으키는 어젠다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화 모드를 조성해 강도를 더해가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벗어나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대화를 전개하는 동안 핵무장을 완성시켜 미국과 직접 대화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5일 우리 정부의 ‘9일 고위급회담 개최’ 제안을 수정 없이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데 대해 김정은식 과시형 직접통치 방식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북한이 남북 협상 과정 등에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최대한의 실리를 확보하기 위해 특유의 질질 끄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해왔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직접 나서 주도하는 김정은식 통치 방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측 제안을 그대로 받은 것 역시 김정은의 의지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은둔자형으로 폐쇄적 리더십을 구사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차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런 연장선에서 볼 때 김정은 위원장은 9일로 예정인 고위급회담 등 추가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도 강조했듯이 한반도 평화를 한국이나 미국이 아닌 북한이 주도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국제사회에 전함으로써 핵·미사일 실험 이후 북한 경제를 강하게 옥죄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 기조를 완화하는 데 이용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향후 회담 의제와 관련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에 우선 초점을 맞춘 것 역시 같은 노림수로 분석된다. 국제행사에 우호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책임감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이미지를 꾀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