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재일한국인 '이중 정체성' 곽덕준 '젊은 그림'서 보다

개인전 '살을 에는 듯한 시선'

갤러리현대서 내달 18일까지

서른살이던 1967년 병상에서 그린 ‘심연II’ 옆에 선 원로미술가 곽덕준. /사진제공=갤러리현대서른살이던 1967년 병상에서 그린 ‘심연II’ 옆에 선 원로미술가 곽덕준. /사진제공=갤러리현대


그림 곳곳에서 눈(目)이 보인다. 슬픈 눈, 반기는 눈은 물론 노려보는 눈, 눈치를 살피는 눈, 타인의 시선에 동조하는 눈 뿐 아니라 어떤 눈동자는 혼란을 느끼며 파르르 떨리기도 한다. ‘추억’과 ‘노정(路呈)’의 눈동자는 겹쳐진 동심원의 소용돌이가 지도의 등고선을 닮았고 그래서인지 넘지 못할 산(山), 삶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높고 낮은 산처럼 느껴진다. 혹은 나무 깊이 팬 옹이처럼 아무리 다듬고 가려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 같기도 하다. 원시미술 같기도 한 그림에서는 파울 클레 같은 순수한 필치가 감지된다.

재일작가 곽덕준(80)의 청년 시절 회화 작품들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됐다. 10일 개막해 다음 달 18일까지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개인전 ‘1960년대 회화-살을 에는 듯한 시선’에서다. 영상과 사진, 퍼포먼스 등 아방가르드 현대미술가로 유명한 원로작가의 덜 알려진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작가 나이 20대 후반에 제작한 회화 20점과 소묘 34점이 걸렸다.


“큰 수술 후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투병 중이었기에 그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초기는 어둡고 진한 색채가 많았지만 1967년 건강을 회복하면서 밝고 경쾌한 색을 쓰게 됐습니다.”

1937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작가는 통역을 사이에 두고 일본어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23세에 결핵으로 한쪽 폐를 잘라내 3년간 투병했다.


“고등학교에서 일본화를 공부했을 뿐 서양화 기법을 배운 적 없던 터라 나만의 오브제 회화를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하던 중에 도자기 같은 질감을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석고와 호분, 본드를 섞어 재료를 만들었어요. 보기에도 구운 도자기 위에 그렸나 싶다면, 정확히 내 의도와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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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등장하는 눈에 대해서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으로서 눈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 시선에는 외부를 보는 작가의 눈과 세상이 그를 보는 시선이 겹쳐진다. 곽덕준은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한국 국적을 가진 이민족으로 살았다. 세계 미술계에서는 ‘제3세계’ 작가였고 한국과 일본 어디를 가든 ‘이방인’이었다. 일본 주요 공립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린 동시에 2003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자신을 ‘신경 곤두선 고양이’, ‘뿌리 내리지 않고 꽃을 피운 식물’로 비유한 작가는 “정체성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재일한국인이란 정체성이 없었다면 나만의 예술 행위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 결과 “한국과 일본의 양쪽 세계를 모두 조망하며 자기 주장을 펼치는 작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뿌리를 모르는 채 일본에서 살아가는 내가 눈 안 보이는 사람처럼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면서 “할아버지 선산이 있는 경남 진주를 찾아가 성묘하며 뿌리를 확인하는 감동적인 시간 이후 비로소 그림 작업에 들어갔다”고 회고했다. 일본어를 썼지만 ‘진주사람’ ‘할아버지’ 등의 단어는 서툰 한국어로 말했다.

이렇게 그림으로 자신의 내면을 표출한 작가는 1970년을 기점으로 아방가르드 미술, 개념미술로 완전히 돌아선다. 몸과 함께 마음도 치유된 덕이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보편적 개념을 전달하고자 했다”는 작가는 이들 그림은 봉인한 채 아내조차 볼 수 없게 했다.

한편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표지로 실린 타임지와 거울에 비신 작가의 모습을 결합한 ‘대통령과 곽’ 시리즈로 유명한 그는 “다음 작품은 ‘트럼프와 곽’을 구상중”이라고 덧붙였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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