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달 중 실시할 금융지주 종합 검사 때 KPI를 내부통제 수준의 평가 기준으로 삼을 방침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이번 점검에서는 지배구조뿐만 아니라 내부통제도 살필 것”이라며 “금융회사가 내부통제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들여다보기 위해 은행이 KPI를 평가할 때 내부통제 항목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고려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은행들은 KPI 평가항목으로 수익성, 고객 만족도 등과 함께 내부통제를 두고 있다. 일선 영업점에서 불완전판매 등 불건전영업을 하거나 규정 위반으로 적발된 행원에 대해 내부통제가 미흡하다고 보고 KPI에서 낮은 점수를 준다.
금융 당국은 은행의 내부통제 수준이 미흡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직원들 간 영업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면 불완전판매 등이 늘어날 수 있지만 KPI에서 내부통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기 때문에 직원들이 성과를 올리기 위해 불건전영업 등을 할 소지가 있다는 인식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15년 금감원은 17개 시중은행 준법감시인들을 불러 내부통제 시스템 검사 결과를 공유하면서 “은행들의 내부통제 수준이 개선돼야 한다”며 KPI의 내부통제 비중을 20% 이상으로 높이도록 권고했지만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은 형식적인 배점 비중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평가 내용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실적 관련 항목만 중시한 나머지 내부통제를 비롯한 고객 관련 항목에는 실질적인 차등을 두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최흥식 금감원장도 올해 신년사를 통해 “금융회사의 의사결정 절차와 평가·보상 체계가 과당경쟁과 쏠림현상을 유발하지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히며 KPI 체계를 세밀히 들여다볼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금융 당국은 모범규준을 개정하는 등 KPI 개편을 강제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단기실적 쌓기에 치중됐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최근 몇 년간 KPI를 개선해왔다”며 금감원의 이번 실태 조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실제 KB국민은행은 올해 들어 금융상품 판매실적을 평가하는 재무 KPI의 비중을 10%포인트 낮췄다. 우리은행도 평가지표를 대폭 줄이며 평가체계를 간소화할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5개 안팎의 점포를 묶어 소그룹으로 운영하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KPI를 평가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지점과 커뮤니티 실적 비중을 50대50으로 뒀는데 올해부터는 커뮤니티 실적을 100% 반영한다. KEB하나은행은 급변하는 금융 환경을 고려해 디지털 금융을 새로운 평가 지표로 신설하기로 했다.
당국의 압박으로 KPI를 대폭 손보려는 노조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과당경쟁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KPI의 전면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KPI는 은행들이 직원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며 “KPI를 살피겠다는 당국의 방침에 은행의 자율성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