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구글·페이스북. 혁신기업의 대명사인 이들은 시장조사기관들이 매년 선정하는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상위권에 오르는 단골손님들이다. 이들 기업은 공통점이 있다. 혁신기업의 대명사답게 파격적인 사무실 디자인으로 사람들이 기업 사무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똑같은 색깔의 각 잡힌 책상들이 일렬로 나란히 줄 서 있는 일반적인 기업의 사무실과 달리 혁신기업들의 사무실은 일터인지 놀이터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화려하다. 칸막이를 치워 열린 공간을 지향하고 있으며 책상·의자 등 각종 소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사무실인지 카페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에는 통일된 규범과 규칙이 중요하지만 요즘같이 혁신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자극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드 업계에서 차별화된 행보로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카드 사옥이 좋은 예다.
■현대카드 정체성의 상징 ‘카드 팩토리’
카드공장 내부에 끌어들이고 일반에 개방
굴뚝모양 조명 등 창조적 시각으로 재탄생
서여의도에 위치한 현대카드 사옥은 3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1관과 2관은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1번 출구 가까이에 있으며 3관은 맞은편 4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다. 첫인상은 다소 실망스럽다. 그간 감각적이고 세련된 카드 디자인을 선보여온 현대카드의 사옥치고는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사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쉬웠던 첫인상은 순식간에 지워지기 때문이다. 현대카드 사옥 세 개 관 가운데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은 3관이다. 이곳 9층과 10층에는 현대카드 사옥의 가장 특징적 공간 중 하나인 ‘카드 팩토리’가 있다. 대부분의 카드 회사들은 카드 제조 공장을 본사가 아닌 외부에 두고 일반인에게 개방하지도 않는다. 이와 달리 현대카드는 지난 2015년 카드 팩토리를 본사에 들이고 이를 개방했다. 현대카드 홍보실 관계자는 “카드 회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카드’이기 때문에 현대카드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브랜딩해 보여드리기 위해 만든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대카드는 카드 팩토리라는 공간을 단순히 본사에 옮겨놓은 것뿐만 아니라 현대카드의 정체성과 철학이 담긴 공간으로 꾸몄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많이 사용한 카드 팩토리는 산업혁명 시대의 어두운 공장을 생각나게 한다. 한 편에는 확성기 등이 놓인 작업 지시대가 있으며 조명은 공장의 굴뚝을 연상시킨다. 이는 금융자본의 상징인 화폐 중에서도 가장 진화된 형식인 신용카드를 공장이라는 산업자본의 시각으로 재탄생시켜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울러 직원들을 위한 섬세한 배려도 보인다. 카드 팩토리는 3관 제일 꼭대기 층에 위치한다. 이는 자연채광을 건물 안으로 들이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인공조명에 지친 직원들의 피로도를 줄여주고 에너지 절감 효과도 거두고 있다.
■공간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
안내문구·커피머신에까지 코딩 언어 붙어
이용자들 사고·행동 고려한 설계 돋보여
최근 국내 사무실의 풍경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크게 증가한 공유 오피스가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의 공유 오피스 기업인 ‘위워크’가 지난 2016년 한국에 진출한 후 강남·도심·여의도 등지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변화를 이끌고 있으며 이에 자극을 받은 국내 공유 오피스 업체들도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또 이러한 변화는 일반 기업으로까지 전이되고 있다. 공간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카드는 이 같은 변화를 가장 적극적이고 빠르게 받아들이는 기업으로 꼽힌다. 사옥 구석구석에 위치한 공간 하나하나까지 이용자들의 사고와 행동을 고려한 설계가 돋보인다. 이를테면 우선 1관 로비 1층 왼편에 위치한 렉처룸(lecture room)에 설치된 의자는 180도 회전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는 회의 도중 앞뒤·좌우 주변에 앉은 사람끼리 얼굴을 보고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사옥을 돌아보다 보면 곳곳에서 코딩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 사옥의 주요 안내 문구가 전부 코딩 언어로 돼 있으며 사내 카페와 식당, 휴게실, 회의실, 심지어 에스프레소 머신에도 코딩 언어가 붙어 있다. 이는 디지털 기업으로의 변화를 꾀하면서 직원들이 코딩 언어에 보다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창의성이 필요한 공간에는 특별히 더 신경을 쓰기도 했다. ‘디자인 랩’이 대표적이다. 이 공간은 디자이너들의 창의성을 증폭시키기 위해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에게 설계를 맡겼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금융상품은 복제가 쉽기 때문에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며 “카드사가 경쟁사와 차별화시킬 수 있는 것은 결국 브랜드이며 브랜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러한 공간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작은 미술관·작은 마을 같은 사옥
사옥 곳곳에 팝아트 작품…지루할 틈 없어
레스토랑·수면·세탁실 갖춰 의식주 가능
현대카드 사옥의 또 다른 매력은 사옥 곳곳에 배치된 미술 작품들이다. 1관 1층 카페 옆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팝아티스트인 줄리언 오피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오피는 사회와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을 LED·영상·조각·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여주는 작가로, 간결한 모습으로 단순화한 윤곽선과 단색조의 평면적 인물 이미지가 특징이다. 현대카드 사옥에 설치된 작품 ‘사라, 워킹, 브라 앤드 팬츠(Sara, Walking, Bra and pants)’는 어디론가 계속 걷고 있는 인물(Sara)을 LED로 표현한 것으로 방향을 잃고 하염없이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또 지하 레스토랑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팝아트 작가인 마이클 크레이그의 작품들이 걸려 있는 등 사옥 곳곳에 흥미로운 작품들이 배치돼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사옥은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다. 현대카드 사옥은 이 같은 목적을 잘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능에 충실한 건축물이다. 사옥 곳곳에 설치된 7곳의 레스토랑, 항공기 1등석을 본떠 만든 수면공간, 세탁실 등이 있어 사옥에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할 수 있게 했다. 이외에 우체국과 연계된 메일함·병원·이발소·헬스장 등도 설치돼 있다. 여기에는 보다 나은 근무환경을 통해 직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누리게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