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왜 아침부터 옆 사람이 하는 온갖 욕을 들어야 하나요.”
서울 광화문 인근 직장을 다니는 최경일(32)씨는 최근 출근길 버스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가까스로 빈자리에 앉아 부족한 잠을 채우려 하는데 옆에 앉은 한 50대 남성의 통화소리에 잠이 깬 것.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지인과 전화로 싸우던 그는 “내가 우습게 보이냐”며 온갖 욕설을 수화기 너머로 쏟아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자리를 옮길 수도 없었던 최씨는 어쩔 수 없이 단잠을 포기했다. 최씨는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혼잣말로 욕을 했다”며 “버스에 같이 탄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이나 식당·엘리베이터 등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전화하거나 대화해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이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전국 성인남녀 736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조사에서도 공공장소에서 가장 불쾌한 매너로 ‘큰 소리로 떠들기(24%)’와 ‘시끄러운 전화 사용(17%)’ 등 소음을 꼽은 사람이 40%를 넘었다. 실제 공공장소에서의 소음공해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했던 김자욱(25)씨는 “좁은 음식점 안에서 한 무리가 너무 큰 목소리로 대화해 정작 함께 식사한 가족들과는 이야기도 나눌 수 없어 짜증이 났다”고 전했다. 한 금융회사에 다니는 박철웅(40·가명)씨는 “지난해 회사 송년회 때 옆 테이블이 너무 시끄러워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가 시비가 붙었다”며 “요즘은 그런 경우가 생기면 우리 일행이 더 큰 소리로 얘기한다”고 전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드라마와 영화 등 각종 영상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소음공해는 더 심해졌다. 이어폰 볼륨을 너무 크게 해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는 물론, 아예 이어폰조차 쓰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송지현(35)씨는 “지하철에서 옆 사람이 이어폰도 쓰지 않은 채 야구를 봐 한 시간가량 강제 관람을 해야 했다”며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폭발 소리가 갑자기 들려 사고가 난 줄 알고 놀란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불과 몇 초에 불과한 시간에 큰 소리로 통화해 주변을 불쾌하게 하는 사람들도 자주 목격된다.
전문가들은 초경쟁사회에서 ‘생존’이 최우선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공공장소에서 상대에 대한 에티켓 감수성도 옅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2030 세대뿐 아니라 6070 고령층도 노후 준비 등 ‘생존 코드’에 매달리면서 타인에 대한 예의는 ‘한가한 소리’라는 취급을 당하고 있다”며 “남을 배려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두형·서종갑기자 mcdj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