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살아가는 50대 중반의 남자가 눈물을 흘릴 일이 많지 않다. 영화 ‘1987’을 봤다. 확실히 사람을 울게 만든다. 옆자리가 전부 50대 중반의 관객이었다. 영화가 중반쯤 흐르면서 양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50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듯하다. 하나는 동질감 때문이다. 영화 속 현장을 함께 누비던 감격과 이제는 늙어버린 자신의 청춘에 대한 회한이 눈물 속에 녹아 흐른다. 또 다른 한쪽은 미안함 때문이다. 시대의 아픔을 고민하고 온몸을 던졌던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이 세월을 넘어 가슴을 후비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987년 6월 대학 후배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현장에 있었다. 경찰이 탈취하는 것을 막고자 그의 시신이 안치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몇 날밤 동안 지켰다. 연세대에서 노제가 열리던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목이 터져라 ‘독재타도’를 외치며 행진한 일도 있었다. 매캐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지금은 판사를 하는 선배도 회사원인 친구도 모두 교문 앞에서 돌멩이를 던졌다. 잘못된 시대에 대한 울분이고 정의에 대한 갈망이었다.
‘5060세대’라는 우리도 철없는 아이들로 치부되던 인생의 시점을 거쳐 왔다. 그리고 정의라는 것이 비록 더디게 찾아올지 몰라도 반드시 찾아온다는 믿음도 경험으로 배웠다. 답답한 것은 이 경험을 우리의 자녀인 ‘2030세대’한테 있는 그대로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이들도 과거의 우리처럼 암울한 시대의 터널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아픔은 경험하는 그 순간 가장 아리게 느껴진다. 그들도 지금 아픈 것이 분명하기에 마냥 참으라고 말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면서 꾹꾹 참아내던 눈물은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가 나오던 종반부에 무너졌다. 극장을 나오면서 퉁퉁 부은 눈이 부끄럽지가 않았다. 옆에서 소리 내어 흐느끼던 그 50대 중반의 또 다른 남자와 멋쩍게 눈을 맞춘다. 우리는 군사독재라는 암울한 시대를 꿋꿋하게 살았고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주춧돌은 아니어도 다 자신의 벽돌 하나씩은 쌓아놓았다.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든 아니든 자신만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세대이다.
우리의 친구이고 후배였던 박종철, 이한열의 고귀한 희생 이후 30년이 지난 현재 무엇이 변했는지 되돌아본다. 일제하에서 시인 심훈이 고대하던 그 날이, 독재정권하에서 1987년 광장을 가득 메우던 군중이 기대하던 그날이 왔는가. 지금 다시 개헌 논의와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제2의 1987이 재현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미완의 그날을 소망하며 만들어가고 있다. 노랫말처럼 짧았던 내 젊음이 헛된 꿈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줄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