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28)나 박태환(29)이 등장하기 전까지 피겨스케이팅이나 수영은 한국 선수들과는 거리가 먼 종목이었다. 두 종목 모두 국내에서 큰 인기도 없고, 선수 저변도 취약했다. 하지만 김연아와 박태환과 같은 ‘깜짝 천재’가 등장하면서 국내에도 이 종목의 ‘열성 팬’들이 생겨났다. ‘한국 선수가 세계 정상을 다투는 날이 오다니 믿을 수 없다’며 감격하는 팬들이 늘어났다. 박태환과 김연아는 단숨에 ‘국민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엔 테니스 차례다. 올해 22살인 정현(58위·한국체대)이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노바크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라는 세계적인 선수를 물리치고, 한국 선수 최초로 메이저 4강까지 올랐다. 한국 테니스에 기분 좋은 소식이 날아온 것이다.
이번 대회 3회전에서 알렉산더 즈베레프(4위·독일)를 꺾은 뒤 기자회견에서 정현은 ‘한국에서 팬들로부터 사인 요청을 받을 정도의 스타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그렇지 않다. 아직 테니스는 한국에서 인기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경기장에서는 가끔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분들이 계시다”고 답한 정현에게 ‘여성 팬들의 연락이 많이 오지 않나’라는 질문까지 나왔고 정현은 역시 “아니다”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질 전망이다. 정현이 22일 조코비치를 꺾으면서 국내 주요 신문 및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TV 중계를 지켜보는 팬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정현을 ‘롤 모델’로 삼아 테니스를 시작하려는 ‘정현 키즈’들의 등장도 기대된다.
또 대표적인 ‘글로벌 스포츠’ 가운데 하나인 테니스에서 정현이 앞으로 10년 가까이 세계 정상을 놓고 다투게 된다면 정현의 위상은 김연아, 박태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태환, 김연아와 비교하기에는 ‘시기상조’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박태환, 김연아도 처음부터 올림픽 금메달부터 시작한 선수들은 아니다. 정현도 이번 호주오픈 메이저 대회 4강 이상의 성적을 시작으로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던 정현의 투정은 앞으로 ‘너무 많이 알아봐서 피곤하다’는 푸념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한상헌인턴기자 arie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