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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아트센터, 믿고보는 공연장으로 손꼽히는 이유

이현정 LG아트센터 기획팀장. /사진제공=LG아트센터이현정 LG아트센터 기획팀장. /사진제공=LG아트센터


영국 런던의 바비칸과 국립극장, 프랑스 파리의 오데옹과 테아트르 드 라 빌, 미국의 브루클린 음악원(BAM) 등 이름만 떠올려도 당장 그곳에서 오늘 밤 무대에 오르는 공연을 예매하고 싶은 극장이 있다. 요즘 말로 이른바 ‘믿·보·극(믿고 보는 극장)’인 셈이다. 국내에도 이런 극장이 있다. 클래식부터 무용, 재즈, 연극, 아트서커스까지 다양한 장르의 동시대적 작품으로 매년 성찬을 차리는 LG아트센터다. 지난해에는 유럽의 스타 연출가 이보 반 호프의 ‘파운틴헤드’ 연극의 미래를 이끄는 영국 극단 1927의 ‘골렘’ 탄츠테아터의 거장 고(故) 피나 바우쉬의 ‘스위트 맘보’ 등 전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공연을 잇따라 선보이며 매진 사례를 이어갔고 지난해 상반기에는 유료 관객 매표율 96.4%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올해의 차림표도 심상치 않다. 아일랜드 안무가로 전세계 극장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마이클 키간-돌란의 ‘백조의 호수’부터 한 폭의 움직이는 회화를 펼칠 세븐핑거스·리퍼블릭씨어터의 아트서커스 ‘보스 드림즈’까지, 본격적인 시즌 개막까지 2개월여 남았지만 이미 극장 팬들의 기대는 한껏 달아올랐다. 그리고 LG아트센터의 이 같은 저력 뒤에는 숨은 공신이 있다. 1996년 입사해 2000년 개관 작업부터 LG아트센터만의 색깔을 입혀온 이현정(사진) 기획팀장이다.

25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 팀장은 “올해는 LG아트센터의 이미지에 맞는 컨템포러리 작품을 필두로 새로운 관객을 유입시킬 수 있는 대중적 작품을 배합한 관객 저변 확대 전략을 꾀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관객들의 관심이 저조해 2~3회 공연으로 그쳤던 장르도 올해부터는 공연 횟수를 조금씩 늘려가며 더 많은 관객이 LG를 통해 공연에 입문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장의 기획자들은 미래를 사는 사람들이다. 전 세계 공연장이 앞다퉈 초청하고 싶어하는 아티스트는 수 년 전부터 작업을 해놓기도 한다. 이 팀장의 마음은 이미 2020년에 가 있다. 서울 마곡지구에 세계적인 건축 거장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LG아트센터가 새롭게 탄생하는 시점이니만큼 작품 선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탓이다. 이 팀장은 “관객들에게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기획자는 관객보다 한 보 내지는 반 보 정도 앞서서 생각해야 한다”며 “그 거리가 너무 멀거나 가까워도 안 되고 관객이 원하는 것이 아닌 원할만한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며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LG아트센터만의 색깔은 무엇일까.

“신조류의 컨템포러리 작품을 엄선해서 선보이는 극장이다. 연간 판매분 중 약 7,000석은 연초에 연간 공연일정만 보고 패키지 티켓을 구매한 고정 관객들이다. 우리 색깔에 맞지 않는 공연을 올린다면 가장 먼저 알아챌 관객들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LG아트의 색깔에 맞지 않으면 소개할 수 없는 이유다.

19번의 시즌을 거치면서 내가 동경하던 유럽의 극장들이 우리의 프로그램을 주목하게 됐다. 얼마전 테아트르 드 라 빌 기획자가 우리의 연간 공연을 줄줄 꿰고 있더라. 과거에 내가 그들의 프로그램을 참고했듯 그들 역시 LG아트의 공연 차림표를 주목하는 것이다.”

▲마니아 관객 비중이 높아진 비결은 무엇인가.

“겨우 1,000석짜리 공연장 하나로 바로 옆 예술의전당과 차별화한다는 게 초기에는 쉽지 않았다. 다른 극장과 차별화한 공연을 소개하려면 초대권 없이 100% 유료관객으로 채워야 한다고 원칙을 세웠다. LG아트가 낯선 작품을 꾸준히 소개하는데는 우리를 믿고 찾아오는 고정관객이 있다. 고정관객을 만들기 위해 패키지티켓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시즌제 운영이 필요했다. 이 모든 게 하나로 어우러져 LG만의 시스템과 색깔을 만들어 낸 거다.

초대권이 없는 극장의 최고 장점은 관람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다. 일찍 사지 않으면 아무도 티켓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객들이 잘 안다. 관객들은 우리 극장이 ‘공정하다’고 믿는다.”

LG아트센터는 탄츠테아터의 거장 피나 바우쉬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사진은 지난해 선보인 ‘스위트 맘보’. /사진제공=LG아트센터LG아트센터는 탄츠테아터의 거장 피나 바우쉬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사진은 지난해 선보인 ‘스위트 맘보’. /사진제공=LG아트센터


▲이보 반 호프, 피나 바우쉬 등은 모두 LG아트센터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아티스트다.


“주목할만한 아티스트라면 스타 반열에 오르기 전부터 꾸준히 지켜보고 한 발 앞서 초청하려고 한다. 이보 반 호프는 2012년 ‘오프닝 나이트’로 처음 소개했고 피나 바우쉬는 한국을 주제로 한 작품 ‘러프 컷’을 공동 제작해 공연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올해 ‘리처드 3세’로 초청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는 2005년에 ‘인형의집-노라’를 함께 작업했는데 지금은 최고의 아티스트가 되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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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너무 일찍 소개해 공연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최고가 된 아티스트들이 있다. ‘창세기’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나 벨기에 안무가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등이 대표적이다.

개관 후 20년 가까이 흐르다 보니 LG아트가 소개한 아티스트 중 당시엔 생소했는데 지금은 대스타가 된 경우가 많다. 이들을 4~5년에 한 번씩이라도 국내 무대에 다시 소개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의 반이라면 또 다른 반은 주목할만한 신진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비율을 5대5 정도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출의 ‘달의 저편’ /사진제공=LG아트센터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출의 ‘달의 저편’ /사진제공=LG아트센터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마이클 키간-돌란의 ‘백조의 호수’ /사진제공=LG아트센터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마이클 키간-돌란의 ‘백조의 호수’ /사진제공=LG아트센터


▲올해 라인업 중 오랜 기간 공들였던 아티스트가 있나.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아일랜드의 독특한 정서를 뿜어내는 안무가 마이클 키간-돌란이다. 7~8년 전부터 그가 내놓은 ‘봄의 제전’ ‘지젤’ 등의 작품을 주목해서 봤고 꾸준히 소통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정치, 종교, 사회 등 우리 삶 전반을 다루는, 현대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우리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15년간 두고 보고 있는 아티스트도 있다. 누군지 말하면 다른 극장들과 경쟁해야 하니 비밀이다.(웃음)”

유럽 연극계의 대스타 이보 반 호프 연출의 ‘파운틴헤드’. /사진제공=LG아트센터유럽 연극계의 대스타 이보 반 호프 연출의 ‘파운틴헤드’. /사진제공=LG아트센터


▲해외 공연 시장에서 극장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점을 체감하나.

“개관 초반에만 해도 한국을 잘 모르거나 유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오기 꺼려하는 아티스트들도 있었는데, 이젠 우리나라의 위상이나 인지도 자체가 달라진데다 LG아트센터도 잘 알려져 있어 아티스트측에서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유명 아티스트들이나 극장의 프로듀서들이 세계의 유수 극장의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칭찬을 하거나 우리 기획 프로그램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경우 뿌듯함을 느낀다. 특히 한 번 공연을 하고 난 아티스들은 꼭 재방문을 희망하는데, 이보 반 호프의 경우에도 공연이 끝난 후 ‘언제 또 올 수 있냐’고 물어 강서구 마곡으로 이전하는 LG아트센터(2020년 세계적인 건축 거장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극장이 새롭게 탄생한다)에서 함께 공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다고 그 전에 다시 오고 싶다’고 하더라. 한국 관객들의 열정적이고 진지한 반응과 공연하면서 가진 좋은 경험들이 결국 극장의 위상을 더 높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LG아트센터가 해외초청 공연은 정평이 나 있는데 국내 제작에는 약하다는 평도 있다.

“양정웅 연출의 ‘페르귄트’ 이자람의 ‘억척가’ 등 모두 국내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물론 해외 투어도 성공적으로 진행한 작품들이다. 초연만으로 모든 작품의 성패를 논할 수는 없다. 앞으로 공연장이 늘어나면 제작 비중도 늘리게 될 거다.”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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