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데스크진단]文 급한데...관료들 '市場' 외치며 총대 안메

몸사리는 관료들..."특단대책 요구했는데 평범한 것 내놔"

靑 중심에 두 부총리 令안서...부처 엇박자로 이어져

이철균 경제부장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일자리점검회의.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과연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나. 각 부처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내각을 질책했다. 문 대통령의 기존 어법과는 확연히 달랐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관료사회의 무사안일을 질책한 게 맞다.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는데 평범한 것을 내놓으니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47조원을 쏟아부었던 과거 대책을 답습하거나 문 대통령의 의중을 소극적으로 읽곤 했다는 것이다.


관료사회는 들썩였다고 한다. 관료들을 향한 변화의 서막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참여정부 2기인 문재인 정부의 관료 불신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아서 그랬지 익히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랬다. 참여정부에서 첫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을 앞두고 “관료를 중용하면 안 된다”고 공개 조언했다. 그는 “관료 출신을 정책실장이나 경제수석에 앉히면 개혁은 물 건너간다”고도 했다. 공감이라도 하듯 문재인 정부는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을 모두 교수 출신으로 앉혔다. 내각에서도 정통관료 출신은 드물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학계와 시민단체 출신을 포진시켰다. 과거 관료들 몫이었던 청와대 비서관조차 대부분 당 출신 인사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참여정부 초기 때보다 더 관료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순항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한때 80%를 돌파했다. 경제부총리 ‘패싱 논란’은 있었지만 외형만 놓고 보면 청와대도 경제부총리에 힘을 실어주면서 ‘진보’의 정치세력과 ‘보수’의 관료세력이 별 충돌 없이 화학적 결합을 시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문 대통령이 내각을 호되게 질타하면서 ‘불안한 봉합’이 끝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관가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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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진보정권과 보수관료의 근본적 불일치는 쉽게 봉합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전직 장관이나 전문가들은 관료에 대한 불신, 근본적인 다름 등을 이유로 제2, 제3의 관료 질책은 다시 나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관료들은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시장의 틀 속에서 정책을 구사하려 한다. 시장에 역행해서라도 정책을 펼치려는 진보정권의 철학을 뼛속까지 공감하기 쉽지 않다.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여전히 일자리는 민간이 만든다는 고정관념이 정부에 남은 것으로 보인다”고 질책한 다음날 김 경제부총리는 “공공 부문보다는 민간 일자리를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맥락은 같다”고 했지만 일자리를 바라보는 진보정권과 관료사회의 근본적인 시각차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문 대통령이 요구한 과감한 행정집행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적극적 행정은 파격적으로 보상하겠다”면서 공무원들에게 적극성을 요구했지만 관료들은 ‘책임’에 더 방점을 찍는다. 정부의 한 고위관료는 “정권 교체기 때마다 많이 봐왔지 않느냐. 정권의 코드에 맞추다가 구속되거나 ‘주홍글씨’가 찍혀 인사에서 배제되는데 움직이겠느냐”고 말했다. 정치세력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관료들은 남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청와대의 입김이 과도한 것도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큰 청와대의 그림을 그렸다. 정책실장을 부활시켰고 경제보좌관 자리를 뒀다. 일자리위원회도 신설하면서 옥상옥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청와대가 주도하다 보니 경제부총리와 사회부총리의 영(令)이 서지 않고 부처 엇박자로 이어진다. 부처들은 “청와대 곳곳에서 내려오는 지시사항을 처리하기도 급급하다”고 반응했다. 그렇다고 전체를 쥐고 조율해가는 청와대의 모습도 보기 힘들다. 김 부총리-장하성 정책실장-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한자리에 모여 ‘원팀-원보이스’를 외쳤지만 톱니바퀴처럼 호흡이 잘 맞는다는 평가는 보기 힘들다. 장관을 지낸 한 고위관료는 “청와대를 크게 그렸으면 이제는 정책을 책임지고 움직이든지, 아니면 정책을 부처로 내려주는 게 맞다”면서 “과거 서별관회의 같은 틀을 부활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정밀하고 적확한 대처를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fusioncj@sedaily.com

이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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