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최초 서양식 양봉법 교재, 100년만에 한국 돌아왔다

獨 신부 한글로 '양봉요지' 제작

150권 중 1부만 남아있던 교재

왜관수도원 獨서 '영구대여 반환'

칠곡군 꿀벌테마공원서 3월 공개

우리나라 최초의 양봉 교육교재로 1918년 발간된 ‘양봉요지’ 150권 중 현존하는 유일본이 독일 수도원에 있다 발간 100주년에 맞춰 국내로 환수됐다. /사진제공=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우리나라 최초의 양봉 교육교재로 1918년 발간된 ‘양봉요지’ 150권 중 현존하는 유일본이 독일 수도원에 있다 발간 100주년에 맞춰 국내로 환수됐다. /사진제공=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1909년 지금의 서울 혜화동 자리에 한국 최초의 남자 수도원인 성 베네딕도 수도원이 문을 열었다. 당시 구걸근 신부라 불리던 독일 태생의 카니시우스 퀴겔겐 신부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어려워진 수도원 경제난도 타계하고 생계수단이 막막한 주변 사람들을 위한 교육기회 제공을 위해 서양식 양봉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실록 등지에 전하는 토종꿀 양봉법이 아닌 서양식 양봉법이 제대로 소개되기는 처음이었다. 구걸근 신부는 양봉기술을 본격적으로 보급하고자 1918년 국문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양봉 교육교재 ‘양봉요지’를 제작했다. 등사본 150권이 발간돼 일부는 독일 수도원 등지로 보내졌고 나머지는 실제 양봉수업에서 사용됐다. 이들 150권 중 현존하는 것은 독일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 소장본이 유일하다. 세계 유일본 ‘양봉요지’가 10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27일(현지시간) 독일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에서 ‘양봉요지’ 반환식을 열었다고 29일 밝혔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봉교재인 ‘양봉요지’의 국내 반환식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독일 무니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에서 열렸다. 지건길(왼쪽부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과 박현동 왜관수도원장, 미카엘 리펜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장, 백선기 칠곡군수가 이번 국내 반환에 힘을 더했다. /사진제공=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우리나라 최초의 양봉교재인 ‘양봉요지’의 국내 반환식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독일 무니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에서 열렸다. 지건길(왼쪽부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과 박현동 왜관수도원장, 미카엘 리펜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장, 백선기 칠곡군수가 이번 국내 반환에 힘을 더했다. /사진제공=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그간 ‘양봉요지’는 왜관수도원 사료 속에 그 존재만 언급됐을 뿐이었다. 지난 2014년 왜관수도원에 선교사로 파견된 바르톨로메오 헨네켄 신부(한국명 현익현)가 독일 휴가 기간에 여러 수도원을 수소문 해 책을 찾아나섰다. 마침내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사료적 가치로 볼 때 한국 반환이 적합하겠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마침 양봉요지 출간 100주년인 올해 영구대여 형식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은 지난 2005년에도 독일 상트오틸리엔 수도원이 소장한 ‘겸재정선 화첩’을 영구대여 방식으로 반환받는 등 외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 환수에 적극적인 인연이 있다.


반환식에서 미카엘 리펜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장 신부는 “형제 관계인 왜관수도원에 영구적으로 이 책을 맡기기로 했다”면서 “100년 만에 한국에 가게된 이 책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물인 벌들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꽃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양봉요지’ 환수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경북 칠곡군이 힘을 보탰다. 왜관읍이 속한 칠곡군은 우리나라 유일의 양봉 특구이며 아카시아 나무 최대 군락지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칠곡군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양봉요지’의 가로쓰기 현대어로 해제본을 제작했다. 왜관수도원 소장품이 된 ‘양봉요지’는 오는 3월 칠곡군이 개관하는 꿀벌나라테마공원 내 전시장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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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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