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타워나 대형 유통시설은 그 자체로도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다. 통상 해당 지역의 쇼핑 1번지가 되고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가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들 랜드마크들이 공공 문화시설을 적극 도입하면서 인근 주민들의 삶까지 바꾸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젊은이들의 소비 천국에서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여가생활의 중심지로 진화하는 것이다. 서울의 랜드마크들이 이 ‘문화 플랫폼’을 앞세워 과거보다 훨씬 많은 인파를 그들 중심에 집결시키고 있다.
◇ 롯데뮤지엄, 타워에서 현대 미술도 한눈에 = 최근 롯데문화재단이 서울 송파구 잠실에 위치한 롯데월드타워 7층에 개관한 ‘롯데뮤지엄’은 그 대표적 시도다. 서울의 명실상부한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롯데월드타워에 미술관을 더함으로써 시민 문화생활의 중심지 역할로 거듭날 태세다. 롯데그룹은 인근 롯데월드몰과 롯데월드로만 대변되던 이 지역에 롯데뮤지엄을 비롯한 타워 내 문화시설이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뮤지엄은 총 1,320㎡(400평) 규모로 타워의 7층 전체를 사용한다. 건축가 조병수 씨가 내부 공간을 최대한 기능적으로 해석해 설계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초고층 미술관인 모리미술관과 협업해 3m 층고를 5m까지 올린 게 특징이다. 설계에서 시공까지는 1년가량 걸렸다.
개관 전시에서는 ‘댄 플래빈, 위대한 빛’이라는 타이틀로 미니멀리즘의 거장인 댄 플래빈의 초기 작품 14점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댄 플래빈은 산업용 형광등을 예술의 반열로 끌어들인 작가다. 롯데뮤지엄은 다음 달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약 50여 명을 대상으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전시를 소개하는 ‘특별 도슨트’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롯데뮤지엄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 조병수,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등으로 구성된다.
아울러 오는 3월부터는 낮 시간대 고객 유입을 활성화하기 위해 댄 플래빈 작가와 연계된 라이트 아트를 만들어보는 아트워크숍, 여러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아트클래스 등의 프로그램도 개설한다. 이밖에 롯데뮤지엄은 댄 플래빈 작품을 오는 4월 8일까지 전시한 뒤 리얼리즘 초상 회화로 잘 알려진 알렉스 카츠의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롯데뮤지엄은 연 3회씩 세계적 미술 거장들의 기획전부터 떠오르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까지 역동적인 현대 미술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 펼칠 예정”이라며 “전시뿐 아니라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엘모아(LMoA) 아카데미’를 개설해 전시 콘텐츠와 연계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사회와 관련된 사회공헌 활동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 문화로 승부하는 서울 랜드마크들 = 롯데월드타워의 롯데콘서트홀도 랜드마크 안에 구축된 대표 문화시설이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후 대형 클래식 공연장으로는 28년 만인 지난 2016년 개관했다.
특히 올해에는 낮 공연 시리즈인 ‘엘 콘서트’ 횟수를 지난해보다 많은 56회로 늘리기로 했다. 주로 오후 7~8시 저녁 시간대에 진행되던 공연을 1만~5만 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낮에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올해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은 엘 콘서트를 비롯해 총 92회로, 특히 10월에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내한까지 예정돼 있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롯데콘서트홀은 개관 이후부터 세계 유수 콘서트홀과 견줘도 손색없을 정도로 음향과 하드웨어가 뛰어나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며 “엘 콘서트의 경우 신선하고 다채로운 기획으로 아침 공연을 즐기는 대중들의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롯데월드타워를 중심으로 롯데월드몰과 에비뉴엘 사이에 위치한 아레나 광장, 롯데월드몰 뒤 월드파크 등에 설치된 여러 공공예술 작품도 시민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에비뉴엘 잠실점에서 롯데월드타워 로비로 들어가는 공간 상부에 자리잡고 있는 체코 아티스트 그룹 라스빗의 ‘다이버’는 가장 이름난 예술 작품 가운데 하나다. 라스빗의 유리 조명·예술 작품은 세계 각지 랜드마크 건물과 특급 호텔에 설치된 것으로 이름 높다. 다이버는 거대한 공간을 바다로 상정해 여기에 뛰어드는 사람의 모습을 유리구슬로 표현한 작품이다.
2016년 9월 석촌호수에 설치한 ‘슈퍼문’은 롯데월드타워가 진행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크게 히트한 작품 중 하나다. 석촌호수를 360도에서 관람 가능한 무대로 삼아 만든 이 슈퍼문은 당시 한 달 동안 600만 명의 시민을 호수변으로 끌어들였다. 지난해 4~5월 진행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스위트 스완’에서는 높이 16m의 엄마·아빠 백조와 3.5~5m짜리 아기 백조 5마리를 석촌호수 동호에 띄워 화제를 모았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문화 행사를 매번 열 때마다 수많은 인파가 모인다”며 “롯데월드타워는 어떤 대중문화도 소화해낼 수 있는 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랜드마크 건물들이 공공문화 시설로 탈바꿈 되는 사례는 또 있다. 신세계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설치된 별마당 도서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코엑스몰은 한때 삼성동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쇼핑시설이었으나 한국무역협회가 직접 운영을 맡으면서 어려움에 빠졌다. 그러다 지난 2016년 신세계가 운영권을 확보한 뒤 별마당 도서관을 앞세워 화려하게 부활했다. 책을 읽는 공간 외에도 강연, 공연 등 문화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춰 도심 속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