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감수(리스크 테이킹)와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가 조성되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 사회로 갈 수 없습니다.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지난해 대선 때 문재인 캠프의 ‘인재영입 1호’ 인사로 주목받은 유웅환(46·사진) 전 KAIST 창업원 교수(SK텔레콤 오픈 콜라보센터장)는 최근 서울 홍릉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창조아카데미에서 열린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강연에서 우리식의 ‘4차 혁명’ 정의를 내려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만 35세에 인텔 수석매니저를 맡고 귀국 후 삼성전자 상무,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등을 역임한 유 센터장은 문재인 정부 4차 산업혁명 정책 설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4차산업혁명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이 달 초 교수직을 그만두고 SK텔레콤 오픈 콜라보센터장으로 영입됐다.
유 센터장은 2000년대 초 인텔에서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로 이른바 윈텔(윈도+인텔) 시대를 관통한 세대인 만큼 퍼스트무버(first mover·시장선도자)가 시장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를 실감하고 있다. 그는 “2등 기업은 먹을 게 없는데 우리는 아직도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 전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새로움을 향한 도전을 꺼리고 답이 이미 있는 해결방법만 찾아서는 퍼스트무버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 센터장은 해답을 기업문화 혁신에서 찾았다. 실리콘밸리가 혁신의 롤모델인 것은 엔지니어들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실패 결과는 투자자가 책임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조직 구성원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성장 비전이 결합될 때 최고의 생산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글은 직원 1인당 매출 20억원, 이익은 4억원을 창출한다”며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일한 경험에 비춰보면 우리 엔지니어의 역량이 미국에 비해 뒤지지 않은데 그 결과가 다른 이유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점이 발생하면 담당자를 단죄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그 원인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 센터장은 “실패의 가치와 조직원의 존엄을 인정해주는 선제적 문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사실 4차 산업혁명은 그다음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 센터장이 그린 우리의 4차 산업혁명은 사람 중심의 문화, 포용적 성장의 사회, 인간을 닮은 기술 등 세 가지가 기본 얼개다. 인간을 닮은 기술로는 4세대(4G)보다 속도가 10배 빠른 5세대(5G) 통신을 비롯해 재료 분야에서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 에너지 시장의 게임체인저인 플라즈마 분야가 꼽힌다. 유 센터장은 “우리나라가 5G 표준화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은 바람직하다”며 “망융합 등 우리가 앞선 분야에서 선도하며 경쟁자들을 따라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 정보혁명을 이끈다면 오는 2021년까지 약 40만개 일자리 창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 센터장은 도전정신을 북돋우는 기업문화가 사람을 키우는 경영이라고 강조했다. 2개 이상 분야의 전문가들이 병렬로 모이면 세계 1등 기술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은 단순히 비용절감을 위해 숙련·전문가를 퇴출시키고 그 자리를 비숙련·비정규직으로 메꾸는 산수만 해서는 곤란하다”며 “사람 중심 경영이 전문가를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