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정치는 올림픽정신을 이긴 적이 없다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남북 단일팀 비판에 직면했지만

역사상 정치적 선용 사례도 많아

관건은 '평화 정신' 부합에 달려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 직전이었다. 함석헌이 서울올림픽평화대회 추진위원장을 맡은 것을 두고 재야 지식인들과 젊은 층 사이에 말이 많았다. 함석헌이 누구인가. 1960~1970년대 3선 개헌과 반(反)유신 투쟁을 이끌며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존경을 한몸에 받던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였다. 그런 그가 독재정권의 정치놀음이라 비판받던 88올림픽의 나팔수 노릇을 자임하다니 “함 선생이 나이 들어 정신이 흐려졌다”는 한탄이 터져 나올 만도 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정치놀음 논란이 한창이다. 특히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을 두고 문재인 정부가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남북단일팀은 정치놀음인가. 당장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오히려 자충수에 가깝다. 최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여론조사만 봐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8.7%로 ‘찬성한다’는 응답(37.7%)을 압도할 정도이고 그 여파로 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히틀러는 올림픽의 정치적 악용에 능했다. 미국·프랑스 등이 나치의 반유태주의 인종차별에 반발해 올림픽을 보이콧하려 하자 히틀러는 유태인 선수와 관중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무마하더니 막상 대회가 열리자 태도가 돌변해 철저히 정치 선전장으로 만들었다. 10만명 규모의 대형 스타디움과 대회 전체를 필름에 담아 만든 기록영화 ‘민족의 제전’이 그때의 잔재들이다. 고대 올림픽에도 정치적 악용이 많았다. 그리스 정치인 알키비아데스가 펠로폰네소스전쟁 중이던 기원전 416년 올림픽 때 전차경주에 자신의 팀을 여러 개 참가시켜 1·2·4위를 싹쓸이함으로써 정치적 위세를 과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올림픽 악용의 결과는 언제나 참담했다. 히틀러는 전쟁광이라는 오명과 더불어 독일에 패망을 안겼고 알키비아데스 또한 아테네를 멸망으로 몰고 간 전쟁론자였다는 후대의 비난을 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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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반대로 올림픽을 통해 자유와 평등의 메시지가 전해진 사례도 있다.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에서의 핀란드 팀이 그렇다. 그동안 종주국 제정러시아의 깃발을 들고 올림픽에 참석했던 핀란드 선수들은 자국 깃발을 들지 않고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버텨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의 협상 끝에 핀란드 국명이 쓰인 팻말을 들고 입장할 수 있었다. 핀란드는 그로부터 5년 뒤 러시아에서 독립했다.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한 평창올림픽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어떻게 기억될까. 단일팀 구성 자체에 대한 여론이 냉랭한 지금으로서는 좋은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북한이 평창 이후에도 핵과 미사일에 매달린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 정신은 정치보다 강하다. 1936년 베를린에 히틀러가 제아무리 정치 선전에 열을 올려도 손기정 선수는 투혼을 발휘해 한국 체육사에 길이 빛날 마라톤 우승으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이 졸속으로 꾸려졌을 때도 세계 최강 중국을 꺾는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선수들이었다. 북한도,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정치적 잇속을 챙기려는 그 누구라도 이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30년 전 함석헌이 숱한 비난에도 88올림픽 성공에 앞장선 것은 오직 평화를 위해서였음을 그가 남긴 말에서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평화운동은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아니 할 과제가 아닙니다. … 평화운동은 가능해도 하고 불가능해도 해야 하는 생명 자체의 꿈틀거림입니다. 역사의 절대 명령입니다.”

hnsj@sedaily.com

문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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