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고광본의 테크人]민병덕 前 국민은행장 "은행장 출신도 수모...청년창업자는 얼마나 힘들겠나"

핀테크기업 '올이프' 회장 변신

빅데이터 등 특허 110개 보유

조건 없이 재능기부로 경영 참여

벤처 투자 '안전제일' 관행 만연

기술력 있어도 투자유치 쉽잖아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이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 방안 등에 관해 인터뷰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소비자·공급자 모두 윈윈(Win-Win)하는 플랫폼으로 유통혁명을 일으킬 생각을 하면 기대가 많이 되죠.”


30년 넘게 은행생활을 하다가 모바일 콘텐츠·플랫폼 기업 올이프(ALLif)의 회장으로 변신한 민병덕(64) 전 국민은행장의 얘기다.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그는 “은행에 있을 때 중소·중견기업 대출 업무를 주로 했다”며 “성장성을 보고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많이 도와주면서 중소·벤처 생태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과거 경매로 공장이 넘어가게 된 기업의 전망을 보고 회생하도록 도와줬던 경험 등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행장 재임 시 심사역들에게 ‘재무제표에 근거한 평면평가에 그치지 말고 기업 성장 과정과 전망, 창업가 평판을 보고 과감히 베팅하라’고 주문했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981년 국민은행에 입행해 영업통으로 이름을 날리며 지점장·본부장·부행장을 거쳐 2013까지 3년간 행장을 했으며 현재는 동국대 석좌교수이자 금융감독원 옴부즈만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설립된 올이프가 보유한 110여개의 비즈니스모델 특허 중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디스카운트노믹스 페니’다. 회원이 가맹점에서 쇼핑하면 바로 전에 다른 고객이 쇼핑했던 금액의 1%를 돌려받고 간단한 게임을 통해 운이 좋으면 그 돈을 튀길 수도 있다. 할인과 재미를 접목시켜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혜택을 보도록 설계된 플랫폼이다. ‘마이프라이스’도 획기적이다. 공급자가 물건을 판매할 때 100초 동안 초 단위로 1%씩 할인이 이뤄지는 구조의 플랫폼이다. 좋은 제품이 한정돼 소비자도 마냥 기다리다가는 기회를 놓치게 돼 묘한 경쟁심리가 작동하며 합리적 가격이 형성된다.

민 전 행장은 “공급자는 홍보 마케팅과 유통 비용을 적게 들이며 판매기회를 갖고 소비자는 좋은 물건을 싸게 사 윈윈하게 된다”며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에 도움을 주는 플랫폼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전단이나 신문·방송, 네이버·구글 등의 검색광고보다 훨씬 저렴하게 제품을 알리면서도 매출이 더 발생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올이프에 합류한 것은 2015년 3월. 그는 “창업멤버들이 대학 연구실로 찾아왔는데 한눈에 성장 가능성을 알아봤다”며 “행장 시절 금융소비자의 트렌드가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을 절감했고 정보기술(IT)에 대한 이해가 빠른 편이어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당시 국민은행의 일평균 전산 처리가 3억건이었는데 92%가 모바일·PC·자동화기기 등 비대면으로 이뤄졌다는 것. 그는 이어 “IT 담당 부행장에게 ‘사이버 공간을 점령하라’고 특명을 내렸었다”며 “이마트를 예로 들며 ‘인터넷뱅킹에만 그치지 말고 고객들이 사이버 공간에 오래 머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정보검색도 하고 유통사와 제휴해 상품도 사고 게임도 할 수 있게 혁신적으로 바꾸라’고 했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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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이 있어 올이프를 보고 바로 초기에 합류했죠. 은행에 33년 근무하며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 수많은 기업의 흥망성쇄를 보며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을 지원하고 컨설팅했던 경험을 살려보고 싶었어요. 올이프가 보유한 다양한 핀테크·유통·미디어·빅데이터·보안 등 비즈니스모델 특허가 110여개나 돼 재능기부 차원에서 조건 없이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을 둘러싼 열악한 생태계를 거듭 절감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중견기업인 등도 적지 않게 투자했지만 아이디어나 전망이 좋다고 해도 모태펀드나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받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우리 현실”이라며 “스타트업이 성공하기까지 데스밸리를 겪게 되는데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받기 전까지 인건비·개발비를 감당 못 하고 중간에 포기하기 딱 십상”이라고 꼬집었다. 매출에 따라 투자 결정이 좌우되는 상황에서 신사업이 성공하기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도 투자 회수가 안전한 곳이 아니면 보증서를 끊어주지 않는데 성장 가능성이 큰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특별기금을 조성해 과감하게 지원해야만 구글·아마존·알리바바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벤처캐피털 역시 심사역에 대한 평가를 매년 단기적으로 하지 말고 장기 실적을 보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 전 행장은 “벤처캐피털을 수십 군데 접촉했는데 ‘은행장까지 한 사람이 왜 그런 데서 일하느냐’라고 해 억장이 무너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실리콘밸리처럼 아이디어와 창업자를 보고 투자하는 문화가 안 돼 있어 전직 은행장도 수모를 당하는데 청년 창업자는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한숨 쉬었다.

금융권에 대해서도 과감한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금융권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핀테크은행 출현과 금융소비자 트렌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앞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핀테크은행조차 금리우대 외 킬러콘텐츠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권이 올이프처럼 IT에 기반한 벤처·스타트기업과 활발한 제휴를 통해 시너지를 높였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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