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한국 제조업체 전반을 겨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중재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통상 전문가들은 국제무역법원(CIT) 제소를 통해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30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미국 세이프가드 발동과 대응방안’에 대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이 예상된 순서였다고 입을 모았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이프가드 발동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라며 “트럼프 정부의 대선 캠페인 때부터 나온 자국 제조업 중시 기조가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세탁기·태양광전지 제조업체가 제기한 청원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만큼 지지층 결집을 위해 트럼프 정부가 무역구제조치를 제조업 전반으로 급속히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 이후 우리 정부가 즉각 WTO에 제소할 방침을 밝힌 가운데 전문가들은 WTO 제소가 모든 문제를 풀어줄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WTO 소송에서 우리가 승소한다 해도 미국은 판정을 이행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 미국이 2013년 가정용 대형 세탁기에 부과한 반덤핑·상계관세를 WTO로 가져가 2016년 승소했지만 미국은 판정을 외면한 채 여전히 관세를 물리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국제기구 판단마저 외면한 채 강공을 펼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CIT 제소로 맞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사법부 역할이 중요한 미국 헌법구조 상 대통령이 사법부의 판정을 이행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대제철에 대한 반덤핑조치 재계산 판정 등 우리 기업들이 부분 승소하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는 상황이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CIT 소송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하고 중국·태국·베트남 정부와도 협력해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한 뒤 미국의 통상정책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