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과학기술 대기업 DSM은 기근과 기후변화 같은 세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를 혁신했다. 그 결과 매출 88억 달러 규모의 이 회사 주가가 역사상 최고치에 접근하고 있다. 지구와 회사 이익 간의 균형을 추구하는 DSM의 비법을 살펴보자.
2014년 9월, 프 로젝트 리버티 Project Liberty 는 그 이름만큼이나 원대한 포부로 출범했다. 이 프로젝트는 아이오와 주 소도시 에미츠버그 Emmetsburg 외곽에서 시작한 산업의 일부에 불과했지만, 미국 최초 상업적 규모로 운영하는 섬유질성 에탄올 공장으로 떠올랐다. 섬유질성 에탄올-식량 작물인 옥수수로부터 직접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대나 껍질 같은 폐기물에서 생산하는 바이오 연료-은 청정 에너지 부문에서 ‘성배’ 같은 존재가 됐다.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잠재력은 컸지만, 획기적인 성과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많은 기업들이 생산을 포기하거나,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산을 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영양 및 소재기업 DSM이 생체공학 코드를 풀어냈다. 이 회사가 섬유질의 목질 바이오매스를 연료로 변환시키는 효소와 효모를 개발해냈다. 협력사인 미국 에탄올 생산 대기업 포에트 Poet는 생산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두 기업의 합작사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네덜란드 국왕과 당시 미 농림부 장관 톰 빌색 Tom Vilsack이 (전 주지사이자 아이오와의 진정한 유지 자격으로) 리본 커팅식에 참석하기 위해 에미츠버그를 방문할 정도였다.
그러나 DSM과 협력업체들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바로 돌멩이였다. 농부들은 옥수수 폐기물을 쓸어모을 때 바이오매스만 얻은 게 아니었다. 돌멩이와 농기구 조각, 기타 이물질 같은 쓰레기도 생겨났다. 그 모든 쓰레기들이 공장 내 설비를 막아 프로젝트 리버티는 처음 2년 간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건 DSM을 좌절시킬 실패로 귀결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최근 몇 년 간 회사가 씨름해온 많은 첨단기술 프로젝트들처럼 ‘상징적 성공’으로 변모했다. 공장 직원들이 거대한 송풍기를
활용해 옥수수를 쓰레기로부터 분리하는 해결책을 고안해냈다. 프로젝트 리버티는 현재 대형선박 탱커 분량의 섬유질성 에탄올을 매주 생산하고 있다. 물론 협력사들의 최종 목표 생산량인 연간 2,000만 갤런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해당 사업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변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일궈낸 성공적 시범사업이자 또 다른 지구친화적 혁신으로 자리를 잡았다.
비록 DSM을 아는 사람은 소수지만, 이 글로벌 기업의 손길은 세계 곳곳으로 뻗어있다. 이 회사는 수 많은 식음료 브랜드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생산한다. 이 재료들은 동물 사료부터 자외선 차단제, 고급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개인 위생용품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DSM은 세계 최대 규모 독사 농장을 소유하고 있고, 그 독은 보톡스 같은 피부용 크림의 마비성 물질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도 DSM은 일반 자동차와 전자라이터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벽에 바르는 페인트와 코팅, 태양광 패널, GNC에서 판매하는 일일 비타민까지 만들고 있다. DSM의 발명품 중에는 세계 최초의 완전 재활용 가능 양탄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섬유(방탄조끼, 해양 정화 그물, 네덜란드 사이클링 팀 유니폼에 사용된다), 소들이 방귀를 훨씬 덜 뀌게 하는 소화보조제도 포함되어 있다.
DSM의 제품이 다양해 보일 수 있지만, 한 가지 공통 주제는 있다. 바로 지구와 그 곳에서 사는 인간의 삶을 개선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10년 전 DSM의 CEO 페이키 시즈베스마 Feike Sijbesma가 세운 비전이다. 당시 이 회사는 대규모 화학사업을 벌이고 있었고, 생물학을 전공한 시즈베스마가 막 CEO에 올랐을 때였다. 그는 경제적 성공과 시급한 세계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DSM의 기회를 탐색했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건 또 다른 석유화학 ‘공장’이 아니었다. 영양실조와 기후변화의 해결책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시즈베스마는 회사의 지침을 ‘인간, 지구, 수익’으로 정했다. 그 후 DSM은 자사의 응용과학 기술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했다.
시즈베스마는 이를 좋은 전략이라 보고 있다: 명분을 가진 목표는 재능을 이끌어내고 자극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려면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그는 이를 ‘미래에 대한 대비(future proofing)’라 부르고 있다). 이는 회사가 급진적인 혁신-지속 불가능한 사업에서 좀 더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하면서 만들어진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시즈베스마는 지난 2007년 회사를 인계 받았다. 그는 곧 25건의 주요 인수를 추진하고, 20억 달러 가치의 산업용 화학 사업과 제약 사업을 매각했다. 그 후 인간과 동물 영양 사업이 매출 57억 달러를 기록해 거의 2배로 성장했다. DSM의 추산에 따르면, 환경이나 인류의 건강을 (경쟁제품들에 비해) 크게 개선하는 제품들은 현재 전체 매출에서 63%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 34%에서 급증한 규모다.
시즈베스마는 자녀가 생기고 나니 세계가 달리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단지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 순수익 같은 것으로 규정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사람들은 그런 숫자들을 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직원들이 합심할 수 있는 원칙을 따르고 싶었다. 시즈베스마는 “그들이 ‘자신의 회사에 대해 세계를 바꾸고, 깨끗하게 하고, 더욱 건강한 음식 재료를 만드는 회사’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스스로 좀더 뿌듯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그는 두 가지 전선 모두에서 성공하고 있다. DSM의 연 매출 88억 달러는 10년 전에 비해 조금 떨어진 규모다. 하지만 시즈베스마가 CEO를 맡은 후, 주가는 61%나 올랐고, 최근 이익도 급증했다.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시즈베스마는 아직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는 성공으로 가는 길이 항상 평탄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제품을 당초 케냐 카쿠마 Kakuma 난민캠프의 ‘숨은 기아(hidden hunger)’를 근절하기 위한 무기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미량 파우더인 믹스미 MixMe라는 제품은 캠프 거주자 5만 명을 괴롭히는 영양실조와 빈혈을 퇴치할 간단하고도 저렴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2009년 2월 해당 제품이 캠프에 도착했을 때, 많은 거주자들은 이 제품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작은 포일 봉지에 담긴 믹스미는 콘돔처럼 보였다. 이 봉지는 남자, 여자, 아이로 구성된 행복한 (서구형) 핵가족이 그려진 상자에 포장돼 있었다. 이 포장을 보고 일부 사람들은 당황스러워 했고, 믹스미에 인구를 제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사악한 의구심까지 가졌다. 그리고 그 소문은 일파만파 커졌다.
당연히 그건 DSM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믹스미는 세계 식량 계획(World Food Programme)과 시즈베스마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가 어우러진 야심 찬 협업의 결과물이었다. DSM 북미 사업부 사장 휴 웰시 Hugh Welsh는 “그 때 우리 서구의 규범과 전통, 관행이 다른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DSM은 그때 제대로 된 교훈을 얻었다. 믹스미는 이제 더 크고, 콘돔처럼 보이지 않는 포장으로 나오고 있다. WFP와의 협업도 비로소 결실을 맺었다: 지난 10년 간, DSM이 WFP와 함께 개도국에 지원한 제품은 연간 3,100만 명에게 제공됐다. 그리고 구호단체와 정부에 영양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의 영양개선 프로그램 사업부(Nutrition Improvement Program division)가 마진은 적지만 이익을 보는 사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웰시는 “수익성이 없으면 지속가능 하지 않다. 그리고 지속가능 하지 않으면 도덕적일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DSM은 그런 윤리관을 내부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0년 이후 회사는 300명 가량의 모든 임원을 대상으로 보상 시스템을 마련해왔다. 반은 장기, 반은 단기로 제공되는 보너스와 스톡옵션은 지속가능한 회사의 목표와 연계되어 있다. 그리고 경영진의 집단적 사고방식을 바꾸기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적응에 실패한 일반 직원들은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이뤄낸 진전은 달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웰시는 “수년간 우리는 공장 운영자들에게 재생에너지로 나아가라고 독려했다”며 “그 말을 보상체계와 연계시켰더니 그들이 갑자기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대한 사례로 뉴저지 주 벨비디어 Belvidere에 있는 비타민 공장 일부가 주 최대 태양광 시설에 의해 가동되고 있는 것을 꼽았다.
시즈베스마가 ‘인간, 지구, 수익’으로 목표를 전환한지 채 1년도 안 됐을 때, 금융위기가 몰아 닥쳤다. 그는 어느 주말 집에서 ‘모든 사람은 상황이 좋을 때 자신만의 ‘가치’를 갖게 된다’고 생각했던 걸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힘든 시기라고 해서 그 가치들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시즈베스마는 자신이 투자자들과 비슷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걸 그 때 깨달았다. 2010년 연례 주주총회에서 누군가가 회사의 WFP 지원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WFP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와중에도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기부금을 줄였다는 사실에 시즈베스마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기부금 축소를 거부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한 여성 주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이런 회사가 내가 투자하고 싶은 회사”라며 환호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DSM이 주주들의 말을 무시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난 2014년, 이 회사 주가는 스위스 프랑의 평가절하와 비타민 E 시장 문제로 급락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댄 롭 Dan Loeb을 포함한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고, 일부는 기업을 분사하라고 압박했다. 그럼에도 DSM은 그런 압력에 맞서는 한편, 일부 사업을 분할하고 새로운 비용절감 전략을 도입했다. 그 결과 롭은 큰 돈을 벌었고, DSM도 더욱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2016년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04%나 증가했고, 올해도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단 한번도 기업 철학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편, 시즈베스마는 선행사업의 힘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대표 인물로 부상했다. 최근 몇 년간,그는 영양실조와 기후변화와 싸우기 위해 기업 커뮤니티를 동원했다. 그는 중국 리커창 Li Keqiang 총리의 세계 CEO 자문위원회 최장수 회원이며, 환경친화성에 가치를 두는 또 다른 회사 유니레버의 이사진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유니레버의 CEO 파울 폴먼 Paul Polman은 “많은 CEO들이 자신의 일자리와 승진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더넓은 세계를 잊고 근시안적으로 주주에만 집중한다”며 “반면 시즈 베스마는 더 광범위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그런 변화에 준비되지 않은 전 세계가 DSM의 혁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예컨대 이 회사는 소의 방귀 완화를 돕는 클린 카우 Clean Cow의 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DSM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과세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전제 아래 해당 제품을 만들었다(소의 방귀는 자동차만큼이나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소에게 매 끼니마다 해당 식품 첨가물을 제공하는 것이 농부들에겐 그다지 혜택을 주지 못하는 추가비용일 뿐이다. 각국 정부는 제품에 열광했지만, 지금까지 구매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DSM은 현재 다농 Danone 같은 유제품 기업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클린 카우를 통할 경우 다농은 더 지속 가능한 제품을 널리 알리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CEO 자리에 오른 지 10년이 지난 지금, 시즈베스마는 단기적으로 겪는 이런 좌절에 낙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경험으로 볼 때, DSM은 이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다: 시즈베스마는 문제들이 차츰 해결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폴먼은 “시즈베스마의 가치는 지금까지 여정에서 그가 겪었던 시련들보다 더 강력하다”고 평가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ERIKA F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