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돼 석방됐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인정했던 ‘포괄적 현안(경영권 승계)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353일 만에 자유의 몸이 되면서 다음달 22일인 삼성 창립 80주년을 맞아 ‘제3의 창업’에 버금가는 수준의 신뢰회복 청사진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5일 이 부회장과 삼성 전직 임원 4명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보다 대폭 줄어든 형량이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사장)에게도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도 이날 석방됐다.
이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데는 1심이 유죄로 인정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과 재산 국외 도피 부분이 무죄로 뒤집힌 것이 큰 영향을 줬다. 재판부는 특히 특검이 제기한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특검이 규정한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고 보인다”며 “정치권력과 뒷거래,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 같은 전형적 정경유착 등을 이 사건에서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삼성의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승계작업을 위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하고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이재용 부회장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년간 나를 돌아보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했다.
이 부회장이 오는 3월 ‘제3의 창업’을 선언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건희 회장은 1988년 3월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는데 다음달이면 30년이 된다. 이 부회장이 신뢰회복을 위해 외국인 사외이사 선임 등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혁·한재영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