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그레이 창업 "가즈아"

지난해 전체 신설법인 10만개

60세 이상 사업체 17% 늘어

20대 2.1%·30대 -2.6%와 대조

경쟁 심한 프랜차이즈 업종 지양

커리어 살린 기술 창업 늘어나

지난해 10월 대구에서 열린 국제섬유박람회에서 정덕현(왼쪽) 정진텍스타일 대표가 바이어들에게 기능성 소재 콤비 블라인드 제품의 특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진텍스타일지난해 10월 대구에서 열린 국제섬유박람회에서 정덕현(왼쪽) 정진텍스타일 대표가 바이어들에게 기능성 소재 콤비 블라인드 제품의 특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진텍스타일


# 지난 1월 강남 도곡동에 한식 전문점을 낸 이창호(62) 씨는 젊은 시절 호텔 레스토랑에서 수석 셰프로 일하며 명성을 날렸다. 10년 전 퇴직 후 취미 생활만 해오던 이 씨는 손맛을 살려 음식점을 운영하면 어떠냐는 자녀의 권유에 40평 규모의 음식점을 내고 인생 이모작에 나섰다. 이 씨는 “평생 월급쟁이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만큼 창업은 남의 일처럼 여겼는데, 내 실력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자식들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며 “퇴직 후 10년의 삶이 너무 지루하고 답답했는데 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니 다시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경북 성주에 자리한 블라인드 원단 제작업체 정진텍스타일의 정덕현(63) 대표는 40여년간 섬유업에 종사하며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재창업에 나선 케이스다. 2014년 11월 설립 후 기술 개발에 주력한 결과 차별화된 제품과 원가절감을 이뤄내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수출이 5억원 수준, 직원 수도 3년 만에 14명으로 늘었다. 정 대표는 “60살에 재창업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우려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100세 시대인 만큼 앞으로 10년 이상은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기술력만 있으면 창업에 도전하는 것이 두려운 일이 아닌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정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 창업에 나서는 이른바 ‘그레이(시니어) 창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6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신설법인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신설법인 9만 8,330곳 가운데 60세 이상이 1만15곳으로 10.2%를 차지했다.

1년 전에 비해 법인 수로는 1,446곳이나 늘면서 16.9% 증가율을 보였다. 40대(3만5,086개, 35.7%)와 50대(2만6,527개, 27.0%)에 비해서는 적지만, 각 세대 가운데 유일하게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반면 전통적인 창업 주도층인 청년 창업은 30세 미만(6,189개, 2.1%), 30대(2만 337개, 2.6%↓)에서 전년도 수준에 머물거나 오히려 줄어든 모양새다. 1년 전인 2016년만 해도 30세 이하(6,062개, 21.6%), 30대(2만 883개, 2.3%), 40대(3만5,425개, 0.8%↓), 50대(2만 5,070개, 2.5%)로 젊은 층의 창업 시장 진출이 두드러졌지만, 지난해에는 시니어 창업이 크게 늘었다.


시니어 창업은 제조업(2,036개, 20.5%), 건설업(1,220개, 14.7%), 영상정보서비스업(311개, 13%), 과학기술서비스업(586개, 10.4%) 등 대부분의 사업군에서 증가세를 보였다. 다만 생계형 창업이 많은 도소매업 부문의 시니어 창업은 1,605개로 오히려 전년에 비해 0.9% 줄었다. 도소매업(1,620개, 10.8%)과 부동산임대업(1,301개, 12.3%) 등 전통적으로 노년층의 참여가 두드러진 분야에서 시니어 창업이 많았던 2016년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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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창업의 증가세는 국내 산업계의 상시적인 구조조정 분위기 속에서 평균 수명 연장으로 경제 활동의 필요성이 높아진 데 따른 현상으로 해석된다. 특히 최근 들어 경쟁이 치열하고 성공률이 떨어지는 프랜차이즈 같은 도소매업 창업에 치중하기보다는 자신의 커리어를 바탕으로 기술 창업에 나서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으로 풀이된다. 업무의 숙련도, 오랜 직장 경력 등도 시니어 창업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창업진흥원의 조사에서도 업종경력 11년 초과~15년 이하일 경우 매출 증가율이 3.3%, 15년을 초과할 경우에는 5.1%로 집계됐다.

한편 지난해 신설법인은 전년대비 2.3%(2,175개) 증가한 9만 8,330개로, 2008년 이후 9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업종별로는 제조업(21.0%), 도매 및 소매업(19.8%), 건설업(10.1%), 부동산업(9.5%) 등의 순이었다. 전기·가스·공기조절공급업이나 금융 및 보험업 등이 각각 전년 대비 215.8%, 11.5%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제조업 분야 신설법인은 1년 만에 8.4%(1,592개) 늘어난 2만 629개로 집계됐는데, 반도체 수출 호조 및 음식료품 시장 확대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높은 증가율을 보인 전기·가스·공기조절공급업은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따른 신재생·친환경에너지 수요 증가의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역별로는 광주(↑18.9%), 강원(↑13.7%), 세종(↑12.9%), 전남(↑10.6%) 등을 중심으로 증가했다. 서울(↓1.9%), 인천(↓0.6%)의 법인 설립이 감소하면서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수원)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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